‘CES 2026’에 깜짝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킨 현대차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의 등장이 이런저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그 아틀라스에서 따왔다는데, 인간의 노동을 대대적으로 대체해 나갈 가공할 노동 기계 로봇에게 썩 어울리는 비유인지 모르겠다.
‘아틀라스’의 등장은 즉각 현대차 주가를 급등시키며 이런저런 장밋빛 전망으로 이어졌다. 현대차를 이제 더 이상 자동차 회사로만 볼 수 없다며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주가 폭등을 만들어냈다. 테슬라를 단지 전기차 회사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이라나 뭐라나.
만일 ‘아틀라스’가 전격적으로 자동차 공장에 배치된다면, 당연히 높은 영업이익을 누리게 될 테니 현대차 자체에는 호재다. 190cm 90kg의 남성 형상을 한 ‘아틀라스’는 최대 50kg를 들어 올리고, 306도 회전하며, 영하 20도에서 영상 40도까지 무리 없이 작동한다. 배터리만 허용한다면 24시간 가동되고,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어 인간은 물론 다른 로봇과도 협업한다니,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경영자 입장에서야 얼마나 이쁘겠는가.
현대차 주가 폭등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거나, AI나 로봇이 미래를 바꾼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아틀라스의 등장이 그리 달갑지마는 아닐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굴복시키며 충격을 주었듯 아틀라스 또한 묘한 긴장과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AI가 빠르게 성장하며 이미 화이트칼라의 노동을 잠식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아틀라스 같은 휴머노이드가 블루칼라의 설자리를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니, 어찌할 바 모르는 이들의 탄식과 한숨이 이어질 수밖에.
‘아틀라스’가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현대차 공장에 먼저 투입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현대차 노조는 즉각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얼마 후 이를 반박이라도 하듯 이재명 대통령은 “밀려오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어쩌라고’ 식으로 말해 버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거대한 수레바퀴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안다면, 대책이 먼저여야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쥐어박듯 타박부터 지르고 봐서는 안 된다.
사실 전망이 매우 어둡다. 한국은 이미 로봇 도입이 매우 빠른 편으로 2005년 노동자 1천 명당 2.66대이던 것이 2020년 통계는 13.17대로 5배나 늘었다. 한국인을 ‘어얼리 아답터’라나 뭐라나 하던데 뭐든 빠르긴 무척 빠르다. 로봇을 공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우리 주변의 삶을 살펴보면 그 활약이 놀라울 정도다.
식당에서 왔다 갔다 하는 서빙 로봇이 이미 어색하지 않고,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로봇이 배달을 문제없이 해내고 있다. 그리고 로봇은 아니지만 무인 정산기 등이 보편적으로 확대되며 많은 일자리가 사실상 사라졌다. 마트 계산대에 있던 여성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수납하던 여성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지 않았나. 이런 상황이니 현대차 노조의 강경한 입장에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로봇이나 AI에 속절없이 밀려나야 하는 절박한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미 밀려오는 수레바퀴에 깔린 판이다. 대책이 시급하다. 그런데 그 대책이 ‘창업하라’라는 것은 무참하다.
일자리 실종을 방치하면 우선 취약한 노동자부터 내쳐질 것이다. 아니 내쳐지고 있다. 로봇에 대한 대책이 ‘창업’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껏 입시 위주의 기계적 문제풀이식 교육으로 창의성이나 도전 정신을 사장시켜 놓고 어떻게 창업 타령을 할 수 있을까. 결국 AI에 지는 후진적 교육 토양 속에서 어떻게 젠슨 황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창업하라’를 외치려면 실패해도 ‘이생망’이 되지 않을 정책부터 마련하라.
젠슨 황은커녕, 대기업은커녕, 연봉 3천 정도 받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구직을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태반이다. 내 주변 지인들의 아이들도 취업을 못해 사실상 ‘은둔 청년’ 상태인데, 정말 암담하다. 이는 이 아이들을 온전히 부모 보고 떠맡으라는 말인데, 이게 나라인가?
밀려오는 수레바퀴를 방치하면, 정말 피하지 못하고 깔려 죽거나 깔려 죽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밀어 넣는 ‘오징어 게임’이 구현될 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주인공 만수처럼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자를 모두 죽여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게다 더한 비극은 어쩔 수가 없어 경쟁자를 죽이고서도 그 현장에 살아남을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제조 공장의 노동자 임금이 로봇 유지 관리비보다 높아지는 그 순간, 노동자의 ‘강퇴’는 정해진 수순이다. 정부나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까.
AI나 로봇으로 인해 인간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한가한 전망 대신 구체적인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로봇세를 걷든, 기본소득을 마련하든, 뭐든 말이다. 기본소득당 용해인 의원은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민주당 위성 정당으로 탈바꿈해 재선까지 하면서 국회에 붙어 있을 생각만 하지 말고, 기본소득에 대해 국회의원 직을 걸고 나서라. 밀려오는 수레바퀴에 취약한 사람들이 다 깔려 죽은 후 부자나 강자를 위한 기본소득에 생색낼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