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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job 조은 Feb 16. 2022

한국인은 어떻게 한국인이 되었을까?

다문화시대 한국인에 대한 역사학적이고 교육학적인, 아주 사적인 접근




한국인이라서 한국사를 배우는 게 아니라
한국사를 배우기 때문에 한국인이다



보통은 엄청난 깨달음을 얻으면 '머리가 띵하다'하지 않는가?

전공 수업에서 이 표현을 듣고 나는 대학생활 학문 신념체계를 결정지을 만큼 뚝배기가 깨졌다.


​국뽕은 취미, 전통을 찾아다니는 것은 특기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니 한국인의 정의를 파면 반대로 나는 왜 국뽕을 느끼는가?에 대한 의문만 가중될 뿐이다. '

우리'가 가지는 배타성과 엄청난 소속감은 이따금 엄청난 이질감이 되어 돌아온다.






그렇다.


우리에겐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우리가 정의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는 무엇인지 점검해볼 필요는 있다.



우리 시대를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한국인’을 이야기할 때 '다문화 시대'라는 걸 괜히 찝고 싶은 건 내 심술일까?

이제 우리에게 ‘다문화가 뭔데?’에 대한 질문조차 무의미하다. 다문화 시대는 시작된 미래다.





그런데 말입니다?

재밌게도 역사책,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는 ‘한민족 신화’에 뿌리내리고 있다.

한민족이라는 어떤 환상과 민족주의에 기반한 '한국인'의 정체성은 다문화 시대에 다시 한 번 화두로 내던져딜 필요가 있다.



.


근데 솔직히 한민족이 어딨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은 반도의 민족인가 ..


아마 우리에겐 몇 백년 전 반도에 뿌리내린 여진족의 피도, 침입해온 몽골족, 이주한 일본인 모든 피가 아주 쪼끔씩이라도 섞여있지 않을까,,

우린 본질적으로 다문화 필연의 역사를 가졌지만 역사학이 만들어낸 역사문화 이데올로기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자 다시 질문한다. “한국인은 무엇인가?”


아마 이 글을 읽는 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한민족, 단일 민족국가'로 교육받은 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일 민족국가’라는 말은 가장 먼저 해체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한국사회가 10여 년 전부터 외국인 근로자 증가, 결혼이민자 증가, 중국동포에 대한 입국 문호 확대 등으로 다문화, 다민족, 다인종 사회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를 위한 다문화 시대의 사회통합에 대한 담론은 필연적이나 빈약하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에 대한 보다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다문화시대에 국내 다문화가정이 처해있는 현실은 담백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4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이주 외국인의 급격한 증가

둘째, 단순 노무자 유입,

셋째 다문화가정의 불안정성

넷째 다문화 정책 사회적 협의 부실이다.


먼저 이주 외국인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었으나 단순히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에 있어서 제한적으로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배우자와 문화적 차이로 가정 내에서는 불안정했고 다문화가정의 자녀와 결혼 이주민 여성에 대한 학습 지원 미비한 실정이다..


그러니 교육자이자 기획자로서 다문화 시대에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또

이런 변화의 조류로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 증대됨에 따라 교육의 기능과 내용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전히 교육의 형태는 시혜적이다.

재밌다.

다문화 시대에 교육을 받을 사람이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아닌가요? 말도 잘 못하고, 적응도 못하고 불쌍하잖아요... '


물론 이렇게 원색적으로 표현하는 이는 없지만 이런 뉘앙스를 풍기며 교육의 대상을 한정짓는다.

웃기는 소리다.

여기서부터 이미 그들을 어떤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는 배타성이 전제된다.

다문화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우리 모두' 받아야 한다.


다문화 가정은 우리가 시혜하며 살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로 호혜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호문화주의의 신념과 연결된다. 상호문화주의는 획일적, 일방적 방식이 아닌 서로 역량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주류 사회와 이주민의 상호소통과 평등의식을 강조한다.

일방적으로 적응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적응을 할 수 있는 사회의 신념 체계가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언어의 표현이다.


이는 단순한 감성적 영역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신념 체계를 가지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저출산 탓에 내년이면 내국인 인구감소가 시작된다. 반면에 국내 외국인 인구는 갈수록 는다.

2024년에 총 인구에서 다문화 가정 비율이 5%를 넘는 다문화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사회의 교육은 단지 다문화가정이나 특정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받아야 한다.


따라서 단지 새로운 관계 설정 이상의 이해하고 이해되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을 넘어서 평생교육의 측면에서도 전 세대가 배울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누구나 살아갈 만한 사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살아낼 만한 사회를 위해서 말이다.


다문화시대를 따로 떼서 이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미 시작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외국인들이 더 많이 들어올 것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고 이제 한국인과 외국인들은 하나의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즐기는 것을 그들도 같이 즐겨야 하고, 그들이 배우고 지켰으면 하는 걸 우리도 배우고 지켜야 한다.

'우리'는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니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이다.





다문화 사회의 해결해야 할 문제와 평생교육의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신념의 문제다.

어떻게 말하면 신념, 어떻게 말하면 이데올로기, 어떻게 보면 태도의 문제이다.

기존의 민족주의와 동화주의적 태도의 해체가 최우선 순위다. 사람들이 혐오나 차별, 폭력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단골 멘트가 있다.


‘그래도 요즘 살기 좋아지지 않았나?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는데?'

아니다.

나는 그의 좁은 세계에 연민을 보낸다.

아마 이들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세계는, 어쩌면 잘 안다고 생각한 세계에도 나도 모르게 나조차도 선량한 차별을 행할 수 있다.


한 집단의 체질에 체득된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의 것이 중요하고 너네는 낙후된 지역 출신이니 하라는대로 하라는 식의 동화주의적 태도의 문제는 잔존해있다. 문화에 있어서 우위는 없는데도 우위를 나누어 일방적으로 흡수하고자 한다.

우리가 맞다라고 말하고 행동하고 그렇기에 우리처럼 하지 않으면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동화주의적 태도이다.


이는 다문화시대를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우리가 가고 있고, 우리가 갖고 있는 공동체 의식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사회정의와 가치를 존중하며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둘째, 학교교육에 있어서도 교육내용과 방법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여전히 교과서의 내용과 방법은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을 다양한 모습이나 인종, 성별로 표현하지 않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



교육은 다문화라는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현실로서 다문화, 우리의 미래로서 다문화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기 위한 ‘장’이 교육현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경우 다문화 가정 역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의 집단으로만 판단하고 실질적인 의사과정에서 배제하고, 정체성을 스스로 형성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 역시 인식론적 폭력이다.


즉, 교육내용의 구성과 교재 제작 과정에서의 보다 실질적이며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반영하는 사려 깊은 정보 수집과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교육이라는 사회화를 넘어서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작용과 공감능력 배양 및 사회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쌍방향적 다문화 교육'이 필요하다.


다문화 교육은 사회체제의 현상유지와 재생산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참여적 교육 활동을 통해 타 문화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공감능력과 표현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다문화 교육에 관철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거둬내야 한다. 교육은 이제 더 이상 사회화를 위한 것이 아닌 주체화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한국화 교육이 아니라 다문화 자녀들이 가진 특성과 장점을 개발하고, 이에 바탕을 두는 다문화 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다문화정책 및 교육 프로그램이 시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시혜적 접근은 다문화 가정을 우리와 다른 특별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사회통합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 속 하나의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그래서 사회통합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넷째, 이를 뒷받침해줄 다양한 교육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문화가정 학생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도 이들의 이중언어 교육을 담당하는 다문화 언어 강사는 정상적인 교육이 힘들 정도로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활동하는 강사 대부분이 이주여성이고 이들에 대한 연수도 부족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한계다.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은 저소득층으로의 경제적 어려움 혹은 학습지체 현상같은 실질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언어교육의 미흡함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의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언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들은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으며 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또 이는 문화지체와 같은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기 쉽다.


물론 학교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이 많다. 따라서 지역사회 내에서도 언어교육을 재고해야 한다. 다문화가정이 학습지연을 겪는 이유 중 핵심적인 것이 언어이다. 많은 지식과 문화가 언어를 통해 전달되지만 언어교육이 충족되지 못하면 생활 면에서부터 직업활동의 영역까지 지장이 있다.

다른 나라 출신의 엄마가 한국어를 못해 자녀의 준비물을 못 챙기는 모습도 티비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학교나 사회에서 다양한 언어로 가정통신문이 나가면 좋겠지만 현실적 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언어교육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지역사회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다문화가정에게는 한국어 교육을 하고, 다문화 가정의 부모는 외국어 선생님으로 만들어 일자리를 제공하여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수 있게 하고 서로의 문화가 공유되는 시스 템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이 순환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다문화 교육이 출발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더 나은 사회의 합의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기에 한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를 배우기 때문에 한국인이다. 한국인은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우리가 공유해야 할 가치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교육에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교육과 함께 미디어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차별에 대해 검열할 필요성이 있다. 

김치를 잘 먹거나 특정 행동을 우리 마음에 쏙 들게 하는 외국인을 보며 ‘한국 사람 다 됐네’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말할 대가 많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규정짓는 것을 거부감 없이 행할 때 사랑받는 존재인 것인가?

TV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자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이 그들에게는 ‘한국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주입한다.



근데 그 한국사람이 Z세대 입장에서는 썩 ,, 유쾌하거나 매력있진 않다.


아마 다문화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국 사회를 더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수평적인 공간으로 바꿔내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걸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빠른 년생’까지 따져가며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따박따박 따지고 술잔 하나를 돌려 쓰며 “이것이 진정한 한국의 주도”라 외치는 외국인들을 계속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아마 또 한국인에게 돌아오겠지

다문화사회가 된다는 것은 모든 개인이 함께 어울리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시그널이다.


이 뿐 아니라 미디어가 동남아 아이들을 불쌍하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경우도 많다. 믿어는 이주민을 불쌍한 사람으로 하고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을 어느 순간 익숙하게 했다.

또 한국어가 어눌한 것을 놀리고, 한국어를 쓰지 않는 것을 지적하는 등의 행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런 미디어의 차별이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방송국은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저희는 누굴 응원해야 돼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 지금은 올림픽 시즌이다.

모두가 신난 이 때 이런 얘기를 하긴 미안하지만, 올림픽과 월드컵만큼 우리나라에서 국뽕을 고조시키는 판이 또 있을까?

이전에 교육봉사에서 다문화 학생을 만났을 때, 한 말이 '선생님 저는 한국인도 아니고 베트남인도 아니래요. 그러면 저는 뭐에요?'였다.

스포츠 정신 아래 우리가 뭉치고 응원하고 아름다운 도전과 극한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상황들은 우리에게 강한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한다.

음… 근데 공동체의식의 본질이 민족주의는 아니지 않을까? 조금 더 상대 국가를 헐뜯지 않고, 우리나라릉 응원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끼어들어도 되지 않을까? 어떤 국가별 구분보다 어떤 정신적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구분되어 즐겨도 되지않을까?


이 작업은 물론 아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화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재고할 수 있는 더 큰 시민에 대한 패러다임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 모델로 세계시민교육을 제안한다. 많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민족주의 패러다임에서 그렇다. 한국인인데 한국인이 아니다. 이제는 민족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시민공동체로서의 성숙한 환대와 초대, 그리고 즐김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어


그렇다.

위에서 필자는 다문화 시대의 교육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평생교육에서 실현해야 할 다양한 포맷에 대해서 떠벌떠벌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역지사지', '솔선수범' 이런 말을 아는가?


물론 나도 잘 안다.

그런데 이전부터 내려온 말들이 정말 중요해지는 순간은 바로 이렇게 사회의 의제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이다.

그것은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다문화시대의 평생교육은 문화적 유전자인 meme 을 전달해야 하며,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외국인 혐오의 가장 많은 부분 중 하나는 이것이다.


조선인이 범죄를..
아니 걔네는 왜 이렇게 민폐만 끼쳐?


점점 외국인 범죄가 극악무도해지고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물론 무서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범죄를 한다거나 했을 경우 어떻게 처벌하고 어떻게 처리하냐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하면 그런 행동을 안하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1학년 때 '범죄와 규범'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범죄가 어떻게 하면 안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웃기게도 간단했다.

‘사람들이 행복하면 된다고'

우리는 살아갈 만한 사회일까?

그리고 과연 지키면서 살아갈만큼 사회정의와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일까?

그런 도덕성과 실천을 갖추고서 외국인에게 잣대를 들이대는걸까?

외국인이 일으키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집중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그런 법법행위나 시민의식을 헤치지 않는 시민의 삶을 지키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외부인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회 정의와 가치를 배우게 된다.


아마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쌓여있는 곳에 가면 스-윽 버리게 되는 것처럼, 반면에 깨끗해서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기 미안할 정도면 나 역시 그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meme은 참 간편하다.

긴 말 하지 않고도 인터넷에서 저장한 짤 하나로 내 상태를, 아니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간단히 상대에게 전달한다.이는 그리고 전염된다.

사회에도 meme이 있다.

우리는 또 다른 우리가 될 이들에게 어떤 meme을 전달하고 있을까?


우리가 갖고 있던 것, 필요한 것을 강화시키고 우리가 전통이라 해서 옳은지 그른지 판명조차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인식도 전환해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과 미래 세계와 필요한 것들을 고민해서 새로운 사회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확실한 것은 그들과 우리가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통한다해서 meme이 전달되는 게 아니다.

글씨를 알고 텍스트를 알아도 행동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의사소통만으로 안된다. 무언가가 더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준비하고 배우고 전달해주고 할 수 있는 그 힘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문화시대의 평생교육에 있어서 핵심역량으로서 강력하게 등장할 수 있다.


다문화 시대? 개념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서 다문화시대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배움의 욕구와 배움을 추구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런 것을 통해 우월성을 강조하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하고 차이를 알고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전체의 우리가 될 수 있는 소통력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평생교육의 결론과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뭣이 중하냐고?


우리를 제대로 보고, 그들을 제대로 보는 것.


외국인이나 그들의 자녀들을 잠시 머물다가는 질 낮은 인력으로 간주하지 말고 그들이 각자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과 존중을 통해 함께 논쟁하고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함양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다문화인(人)들에 대한 불신을 믿음과 의식소통의 사회자본으로 개조하고 그들의 각자력을 발휘할 기회를 보장하면 오히려 이 사회는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국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의 국뽕은 즐기되 다음을 준비할 필요는 있다.



언젠가 올림픽 스타로 다문화가정의 청년이 나오지 않을까?ㅡ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라벨링’이 앞에 내세워지지 않을만큼 당연한 사회 인프라와 인식이 있으면 좋겠다



하나가 되고, 고품격의 시민의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중요시 여기고 존중하는 그것들이 전달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이것을 중요시하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정의로운 것이라고 중요시 여기는구나라고 배우는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한다.


그것도 아니면서 교육과정을 만들고 내용을 만들고 방법을 만들고 무결한 도덕성을 외친들 무슨 소용일까?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 어디 가서 배워도 가치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한 게 가장 좋으니까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같이의 가치, 가치의 같이'



같이 간다는 건 뭘까?

나는 너에게, 나는 너에게 안전하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너는 여기서 무엇이라도 될지어다~같은.


우리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공동체가 좀 더 발전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안전하다는 감각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거기서 좀 더 새롭고 긍정적인 것들이 나오니 말이다.


우리의 것만 강조하고 외국의 것이라고 규정된 것을 정작 일상 접점에서 무시하면 공동체가 유지되고 발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고, 차별이 아니라 차이이며 배제가 아니라 배려다.

틀린 거는 하면 안되고 다른 것은 인정해야 한다. 차이는 존중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차이를 통해 차별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또 배려해야 한다면서 배제시켜서는 안된다. 이것은 하나의 ‘우리’가 되기 위한 기본이다


문화가 다양한 사회는 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고 다양한 것을 품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살아남은 민주주의같은 다양한 사상들도 한 면만 포함하고 있 않기 때문에 수정을 거듭하며 우리가 아직도 믿는 가치로 작용하고 있다. 다문화시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도움을 받아서 현 사회를 해체하고 사유하고 나아가는 진화론적인 과정이다.



나는 정의는 경험되고, 가치도 경험되고, 문화도 경험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한 사회의 개인 은 당대의 경험에서 ‘생성’된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는 일방적인 게 아니고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나는 입체적인 인물이 공감을 받을 수 있듯 입체적인 해체가 이루어져야 더 많이 공감받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다문화시대에 평생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또 하나의 소중한 가치를 놓치지 않도록 서로를 인정해줄 수 있는 시작을 열기 위 해서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 역시 우리 사회의 공동체임을 인정받고 자신의 특성과 능력을 사회 안에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은 분명, 사회에 또 다른 가치가 하나 더 생기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이 글을 마친다.





날마다 새롭게!



빨리 코로나가 풀려서 이주민과 지역민이 함께하는 문화축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외국의 MAMF처럼 말이다.


이전에 한 평생교육 토론을 할 때 조원 분이 이 곳을 다녀왔는데 지역민과 이주민이 모두 함께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씀하셨다.

축제는 즐김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라는 의식을 체득하게 만드는 장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울러질 수 있고 즐기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지역민과 교류하는 축제가 많이 생겨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데 코로나가 우리가 사랑할 기회를 자꾸 앗아가버린다. 언젠가 국내에서 지역민과 교류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나의 커리어가 되기를 희망하며! 여기까지 추신도 마친다.



이렇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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