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
사건의 지평선은 2022년 내 마지막 노래다.
보통은 새해 첫 날에 들은 노래로 의미를 부여하는데 새해 첫 날 바라는 건 생각해보면 다 똑같았다.
’- 하게 해주세요‘로 끝나는 말의 -에 들어가는 것도 뭐 크게 다양성은 가지지 않았고 서술어가 같은 건 말할 것도 없다.
한 해를 다 겪고 나서야 ‘내가 바라는 건 이거였어’ ‘몰랐는데 이런 것도 있었구나’와 같은 진정한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 2022년에서야 마지막 노래가 어쩐지 애틋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2022년 12월 31일의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더라
뭐든 시작될 것 같은 1월 1일보다, 끝 맺는 12월 31일이 좋다.
인생이 내 것이라 여겨진 순간부터는 시작이 있기에 끝나는 게 아니라 끝나는 것이 있기에 시작할 수 있음을 알게되었기 때문일까
무언가가 어느 시점에 그냥 시작되는 게 아니라 내 고민이 끝났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일과가 시작되는 건 어떤 불편함처럼 내 마음에 모양도 잡히지 않은 채 울렁울렁 돌아다니던 의문과 감정들에 수 없이 뒤척이던 밤이 끝났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지금 있는 친구들과의 안정된 관계가 시작된 건 서로에게 수 많이 치대고 기다리며 혼자서만 그럴 거라고 상처받고 이해했던 서투름이 끝났기 때문임을 안다.
지금 끝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어느 날 또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그런 고민들이, 밤이, 서투름이 와도 막연하게 불안해하지 않고 조금은 더 정답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끝난 줄 알았는데 또 시작되었구나. 하지만 이것도 끝맺을 날이 있음을 알아-하면서 말이다.
그런 것들이 있기에 소중한 것이 소중해질 수 있었음도 사실 안다.
굵은 못을 마음에서 빼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소중한 것을 걸어놓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던데, 나는 그 굵은 못이 소중하다.
소중한 것들을 튼튼하게 오래 걸 수 있게 해주니까, 소중한 것이 갑자기 생겨도 걸어놓을 힘을 만들어주니까
생각보다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탓일지 ‘좋은 것만 가져가기에도 아쉬운데 절대 너 같은 것한테 내어줄 내 마음이 아니지‘라고 버티다 굵은 못에 지거나 박혀도 버티지 못해 무너진 순간도 있었지만, ‘박힐거면 제대로 단단히 박혀라’하며 마음 한 켠 내어주고 품고 가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단단해지는 모순이라…
역시 부정적인 것에 대한 빠른 인정은 나의 힘
아무튼 내 2022년 돌아봤을 때, 좋은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내가 가진 것들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걸어본 것 같다.
아직 그 그림들이 무엇이라 모두 해석하긴 어렵지만 그저 바라보면서 “음 .. 이렇게 모아보니 꽤나 멋진 갤러리 같은 걸?” 정도로 직관적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이종석이 아이유한테 말했다면 나는 나에게,
“이번 년도는 유독 그렇게 멋져줘서 너무 고맙고, 내가 아주 오랫동안 많이 좋아했다고 그리고 존경한다고 전하고 싶다. 2022년의 나를 보면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반성도 많이 했고 조금 더 열심히 살아놓을 걸,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조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아악 그리고 ‘스물일곱’이라는 단어 너무 어감이 좋아!
“저는 조은이고요. 스물일곱입니다 ” 라고 말하는 내가
그냥 기분이 좋을 듯 ㅋㅋ
내가 어떻게 먹은 스물일곱인데
_2022.12.31
어쩌면 이건 사건의 지평선의 가사의 감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아낌 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사건의 지평선 가사다.
저 노래 가사 다음이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 할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다.
사건의 지평선,
나는 몰랐는데 어렵게 물리학 용어 안 대고 설명하면 정말 과거로 보내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별이니 끝이니 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게 있어 이십대 중반과 이십대 후반의 가장 큰 차이라면,
이십대 중반에는 시작하는 것에 대한 선택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면 이십대 후반에는 끝에서의 선택을 통해 나를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떤 꿈을 가지고 대학을 가기로 선택했다가 아니라 졸업할 때 무엇을 선택했는지(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꿈이라면 어떤 것으로 구체화해서 선택했는지까지), 내가 어떤 것을 하기로 마음 먹을 때보다 끝낼 때의 마음이 더 많은 내 진짜 욕구를 증명한다. 그게 중간에 자기합리화나 몸과 마음의 나태함만 끼지 않는다면 확실히 그게 나다.
이십대 후반 즈음 되면 모든 끝에서 담담하고 단호해질 줄 알았는데 사건의 지평선 가사처럼 ‘여전히 자신 없지만 안녕히’와 같은 마음으로 끝을 선언한다.
소중한 건 왜 시작할 땐 두려움을 동반하고 끝낼 땐 더한 여러 감정을 동반하는건지 나 자신에게 why라고 묻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why not?
또 다른 시작은 끝을 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내가 좋아한 것도 소중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내가 좋아할 것도 소중하니까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울음이 날 것도 같았어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티모시의 인터뷰를 봤다.
인터스텔라를 보고 너무 좋아서 12번을 봤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울었단다.
‘좋아서 12번 볼 수 있지 근데 왜 울어?’가 감상이었는데, 알고보니 티모시가 인터스텔라를 촬영했기 때문이었다.
‘촬영을 적게 했으니까 그렇게 적게 나올 줄 알았는데 정말 그렇게 적게 나왔다’
영화관에서 몇 번이나 돌려본 건 어쩌면 자기가 나와서, 근데 너무 재밌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있어서겠지만 그 사실이 집에 와서 어느 순간엔 슬픈 사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이해가고 재밌었다.
더 웃긴 건 티모시는 그걸 찍고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난 이제 연기로 가는거야 됐어!’ 하며 학교를 그만뒀다는 거다.
그게 무려 콜롬비아 대학이다.
그럼 그 때의 티모시는 지금 와서 그 때 자기의 선택을 후회할까? 당시 느꼈던 감정을 잊었을까?
아닐거다.
티모시가 결국 성공했으니 하는 말이 아니라 그 모든 감정을 잘 소화하고, 결국 선택의 이유를 찾아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웃고 있는데 울음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왜 이리 흔들리지 싶을 정도로 우왕좌왕 한 순간도 있었다.
내 이십대 중반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잃음의 연속이었다.
길 잃는 걸 선택했으니 포장지가 당연히 그 모양 그 꼴일 수도 있갰다.
그렇다면 나는 잘 길을 잃었으니 성공한거다.
ㅅ 받침을 넘어 ㅂ 받침이 들어가는 나이가 되면 이십대 후반이란다. 그럼 나는 올해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온거다. ㅅ…ㅂ(욕한 거 아닙니다)
보통은 그래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들 하는데 왜 나는 많은 게 달라진 것 같은지 모르겠다.
다시 내 글을 돌아보며 밟아보니 내 이십대 중반의 대표글은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골라도 맞는 길을 고르지]와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 글인 것 같다.
결국 그렇게 헤맨 것들이 모두 나였다
그 때도 그럴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길의 끝에서 보니 정말 그렇다.
그 여정이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닌데,
내 스스로 부끄럽고 무례하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허무와 경쟁을 이겨낸 적도 있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니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던 내가 바라던 낯선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땐 내가 바라던 내가 너무 낯설었다.
마주하면 기쁘겠다 이상으로 그 길로 가는 두려움이 분명 컸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나는 지나온 길에 대한 아무 아쉬움 없이 내가 바라던 나를 맞이했다.
그제서야 길 위에서 만난 수 많은 낯선 나를 의문 없이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낯선 내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20대 중반은 그 모든 낯선 나를 찾아 헤매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그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줬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줬다.
취미로 3년 간 하던 교육봉사와 멘토링 덕분에 인천시 청년의 날과 기업과 재단 행사 진행자를 맡을 수 있었고, 휴학 기간 동안 재미로 해볼까 하던 광고동아리 덕분에 영상 출연진으로 오게 되어 알게 된 지금의 회사가 마음에 들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광고계에 입문하기도 했고, 내 뜻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하기도 했다.
나에게 이것보다 더 좋을 것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에서 이게 나한테 좋은 것이구나, 이걸 알려고 그랬구나
조은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게 어색하고 머쓱했던 시간을 지나 나는 이제 누구보다 내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이런 걸 해도 되나 하던 시간을 지나 그 분야에서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에겐 우리가 지금 1순위야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주체성이라는 게 내 스스로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감각이란다.
생각해보면 시작이든 끝이든 스스로 하고 나면 좋은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 용기 내서 시작이나 끝을 말하자는 건 아니다.
어쩌면 시작이나 끝을 말하려면 선을 그어야 하는거다. 나는 지금까지는 헤맸지만 지금은 이런 거야- 이렇게 끝낼거야- 라고. 그 전까지는 어떻게 나에 대해 오해해도 그 모든 게 맞았지만 이제는 내가 나를 이해하고 오해와 오해가 아닌 것을 풀어내야만 하는거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선을 긋는 두려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오해를 풀고 얻게 된 신뢰를 갖는 법을 배우는 일이 정말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게 사건의 지평선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변화일 거다.
내 생각이다.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P.S
윤하가 역주행 이후 한 인터뷰가 좋았다
그리고 거기에 달린 댓글이 좋았다.
별은 늘 거기서 빛났고
언제든 발견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세상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한다는 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향이 열리고,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 아닐까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면, 웃어 넘길 수 있다면, 같이 기억해줄 사람 한 명 있다면 뭐든 잘 보내줄 수 있으니까
2022년은 유난히 역주행이 많았는데,
노력한 사람, 진심인 사람이 성공한다는 걸 보여준 한 해여서 그래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