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는 나의 글 "AI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에서 '휴먼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을 처음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개념에 대해 너무 모호하게 짚고 넘어간 것 같아 내가 생각하는 휴먼 프리미엄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휴먼 프리미엄의 배경
AI와 로봇 기술의 발달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이제는 쏟아지는 AI 관련 뉴스에 피로를 느낄 정도이니 말이다. 이 속도라면 근미래에 인간의 노동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현존하는(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대부분의 노동이 AI와 로봇에게 넘어간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휴먼 프리미엄의 개념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위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노동(또는 모든 노동)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된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예상하는 답변은 1. 놀거나 쉰다 2.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한다 정도이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놀거나 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노동이 대체되었으니 노동으로 인한 소득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생산수단(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을 소유하거나 정부 또는 기업에서 배급을 받아 생활하는 수밖에 없다.
일정한 목적(식량, 노동, 의복, 애완 등)을 위해 사육·관리하는 동물을 우리는 가축(家畜, livestock)이라 부른다. 의식주가 제공되는 환경에서 안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인류 존속과 존엄성에 의지해 살아가는 동물을 인간다운 인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든다.
그렇다면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노동과 별개의 활동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또한 결국 노동으로 취급된다. (에너지와 시간의 투입, 노동의 보상=자아실현 욕구 충족) 그리고 이 경우, 1. 모든 이가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경우와 2. 여전히 소수의 인간들이 자아실현을 하는 경우로 나뉜다. 자아실현을 하는 활동 중 노동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졌으니 우리는 창작 및 예술, 지식 탐구 및 자기 교육, 사회적 기여 활동 등을 통해 자아를 찾아나갈 것이다.
지식에 대한 접근의 난이도와 지식의 생산 가치가 AI로 인해 현저히 낮아졌으므로 누구나 지식 탐구와 생산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지능은 AI와 달리 평준화되어있지 않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도구가 주어져도 이를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고 거기서 격차는 벌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지식생산은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주도될 것이며 그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창작 활동을 포함한 다른 분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중요해지는 것은 자신이 뛰어난 부분을 얼마나 빨리, 잘 찾고 그것을 갈고닦느냐이다.
휴먼 프리미엄의 시작
생산에 필요한 인구가 줄어들 것이므로 선진국을 시작으로 인구 감소가 가속화될 것이다. 주요 산업을 제외한 땅을 차지하는 기초생산시설은 모두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핵융합과 에너지 기술이 해결될 것이므로 운송에 드는 비용이 거의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녹지 조성과 환경 인프라를 유치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득권과 일반인을 나누는 것은 생산수단의 소유여부뿐이다.
여기서 휴먼 프리미엄은 시작된다. 인류의 생활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인간의 욕망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휴먼 프리미엄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개념이다. 모두가 AI와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고 인프라를 누리는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인간의 노동력을 제공받는 상황은 그 자체로 권력을 입증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노동은 수요와 공급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자아실현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것인가? 후자의 노동을 선택한다면 노동에 따른 보상을 얻을 것이다. 단,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이전보다 제약이 생긴다.
휴먼 프리미엄의 조건
이 시대의 인간이 인간에게 노동력(또는 창작에 대한 산출물 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바로 품질이다. 이미 로봇과 AI는 상당한 수준의 서비스와 인프라를 제공 중이다. 인간이 이들보다 뛰어난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굳이 그들에게 비싼 노동의 대가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노동의 제공자는 로봇과 AI보다 월등한 만족감을 제공해야 하며 수요자는 그들의 노고에 따른 더 높은 보상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는 지점은 올라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숙련자가 인정받게 된다.) 인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는 현상. 인간다움에 대한 인정. 이것이 휴먼 프리미엄이다. 물론 한계점도 존재한다. 숙련되지 못한 노동자는 여전히 잉여인간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고 기본배급 또는 최소기여를 통한 최소생활요건만을 충족하며 살아가게 될수도 있다.
휴먼 프리미엄 현상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이들의 욕망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의 욕망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오히려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아실현 활동을 하거나 최소기여에 따른 보상만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 수도 있다. 이것 역시 이 시대의 인간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마치며...
휴먼 프리미엄의 개념은 현재 기술 발전과 정책의 방향, 대응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이가 배급을 받는 사회가 온다면 휴먼 프리미엄의 개념은 사라지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뉠 것이고, 현재의 경제 체제가 견고하게 지속되는 경우에도 등장하지 못할 개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따른 비용과 선택에 따라 인간 노동의 축소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