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살아있는 한 생각하는 것은 멈추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어떤 대사 과정을 거쳤길래 글이 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까?
그 전말은 이러하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대사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고 그 부산물을 배출해 낸다. 우리는 에너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다만 있고 없음에 따른 힘의 차이를 느낄 뿐이다. 그러나
그 부산물. 즉, 똥은 직관적이다. 보이고, 냄새나고, 우리가 살아있다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생각도 그렇다.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신진대사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생각과 똥의 가장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배설'이다. 생각은 우리의 뇌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배설하지 않는 이상 외부로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생각과 똥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여기까지 와서 이미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글이 똥이라는 생각을 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글과 말은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 속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생각은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똥은 어떤가? 똥 역시 우리가 먹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똥은 우리의 몸 상태가 어떤지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다. 소화의 정도에 따라 우리가 뭘 먹었는지 구분이 가능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 대개 똥의 모양은 마치 한 마리의 구렁이처럼 매끈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생각한 것을 얼마나 어떻게 소화했느냐에 따라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하고 난해한 글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글(말)이 똥이라고 생각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똥을 참으면 병에 걸린다. 건강이 안 좋아지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떤가?
생각 역시 배설이 필요하다. 화병은 괜히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뿐인가? 생각을 배설하지 못하면 몸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는 몸의 문제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흔히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똥이든 생각이든 어디서 어떻게 배설해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화장실에서 썼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실외배변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을 배설하는 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다 하는 것은 똥이 마렵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싸는 것과 다름이 없다. 후자의 행동은 사람들이 잘하지도 않을뿐더러 수치심을 느끼겠지만 전자의 행동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느낀다.
물론 이 주장에는 명확한 한계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말과 글을 충분히 다듬고 더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황금 똥을 싸기 위해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똥은 정말
모든 대사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점에서 분명 글(말)과 명확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똥글'이라는 합성어가 생긴 데에는 어느 정도 사람들의 인식과 공감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 역시 똥글이다. 다만 이 글이 브런치라는 공간에 똥을 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대답이
되어줄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