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로 보는 넛지(nudge)

by 주리비

최근 흑백요리사 2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1과 마찬가지로 유명 셰프들이 대거 출현했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가들도 많이 소개되어 이슈가 되거나 새로운 신예들이 등장하는 등 회차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기대를 안겨주어 매주 화요일이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 오늘은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느낀 몇 가지 연출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실 이전 주차까지만 해도 확신이 없었는데 이번 주차를 보면서 조금 확신이 생겨 글을 써본다.) 1월 6일 올라온 흑백요리사 11화에서는 드디어 결승 진출자를 가리는 세미파이널 무대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시청자들은 스포는 싫어하지만 예측하는 것은 좋아한다. 흑백요리사에서는 시청자들이 미래를 예측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통해 재미 요소를 끌어올렸다고 본다. 먼저 세미파이널 진출자를 소개하는 장면을 간단하게 보자.


진출자 소개를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7명의 셰프 중 단 3명 만이 소개 장면에서 다른 셰프의 음성이 추가된다. (다른 4명의 셰프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소개 겸 포부를 밝힌다.) 그리고 다른 세프의 음성이 추가된 3명의 셰프들은 이어지는 세미파이널에서 스토리의 주 축을 담당한다.


두 번째 무대 역시 같은 장치가 사용된다. 첫 결승 진출자가 정해지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빠르게 반복되는 컷 편집의 순서를 유심히 보면, 다음 스토리에서는 누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보통 흑백요리사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먼저 보여주는 편이다.


물론 모든 대결에서 승리하는 인물을 앞쪽에 배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편집을 보고 인물의 소개 순서를 통해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이런 사실을 눈치채고 예측을 하도록 만든다는 지점이 흑백요리사가 편집을 연출 장치로 잘 사용하고 있다는 증명이 아닐까 싶다.


나는 흑백요리사의 편집 방식을 보고 대학교에서 읽은 '넛지(Nudge)'라는 책이 떠올랐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는 일종의 자유주의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즉,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되,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개인에게 열려있는 상태를 말한다.


넛지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공중화장실 남성용 소변기에 파리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파리를 붙임으로써 사용자는 무의식적으로 파리를 향해 조준(?)을 하게 되고 이는 소변이 변기 외부로 튀는 것을 방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처럼 넛지는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쉽게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해 목표를 달성하는데 그 의미를 둔다.


흑백요리사를 예시로 들면,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인물을 앞쪽 또는 다른 인물들과 다른 포인트를 주어 시청자들에게 힌트를 주고 자연스럽게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예측하도록 만들어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예측을 하게 되면 그 예측이 맞던 틀리던 사람은 재미를 느낀다. 예측이 맞는다면 "거봐, 내 말이 맞지?"가 되는 것이고 예측이 엇나간다면 "와, 이런 전개는 예상 못했는데?"가 되기 때문이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연출적인 면을 떼어놓고 봐도 흑백요리사 2는 대중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잘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사제지간의 매치업이나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팀원끼리의 매치업은 그렇다고 쳐도 쉽게 볼 수 없는 고급 식재료와 그걸 요리하는 기술, 전해지는 의도와 같은 것들은 정말 순수 재미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당연히 열광할 수밖에..)


흑백요리사 2는 이제 결승 무대만을 남겨놓고 있다. 과연 누가 올라갈 것인지,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혼자만의 즐거운 추측을 하며 임성근 셰프님의 멘트처럼 채널 고정하고 다음 주를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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