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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22. 2020

아이낳을 자유를 허하라(1)

그야말로 1인 가족, 비혼, 딩크, 노키즈존이 대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삶은 정반대에 있다. 4인 가족, 기혼, 애들 둘에 남편이 딸려 있고, 24시간 내내 애들과 붙어 있다(코로나로 집에서 데리고 있은지 어언 반년째다). 또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을 보면 결혼 안한 사람들 수두룩 빽빽하고, 결혼은 해도 애 안 낳은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 별나게 결혼하고 애를 (그것도 둘이나) 낳았다. 대세가 뚜렷한 사회에서 혼자서 다르게 살아간다는 건 사회적 소수자가 된다는 건데, 그건 퍽이나 외로운 일이다.


첫째가 3살 되던 해,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갔었다. 면접위원들이 공통적으로 묻는건 단 하나였다. "둘째 애를 낳을 계획이 있나요?" 나도 사회 생활 안해본 사람도 아니고, 그들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전직장에서 중간관리자로 있어봤기에 잘 안다. 회사 입장에서야 당연히 회사에 폐 끼치지 않고, 회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인력(인재가 아니다)을 원한다. 해당 인력이 업무에 탁월하고 유능한지는 중요치 않다. 여자 직원은 임신이네 해서 병원 들락거리고, 출산하면 또 3개월 쉬다오고, 허구헌날 애가 아프네 어쩌네 조퇴가 잦다가, 결국 육아휴직을 쓰기까지 하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을 거다. 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해도 아내의 내조 받으며 깔끔한 와이셔츠 입고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하러 나오는 남자 직원이 뽑고 싶을 거다. 


그래서 나도 면접위원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둘째 계획 없습니다." 그들은 재차 확인했다. "확실해요? 첫째가 세살쯤 되면 둘째 가질 때 됐는데..." "계획 없다니깐요. 요새 세상에 애 하나도 키우기 벅찬데요. 어휴.." 짜증 섞인 투로 대답했는데, 그들은 도리어 안도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작정하고 계획한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생겼다. 첫째하고 터울이 더 나지 않게 둘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삼신 할머니가 살며시 점지해주고 가신 모양이다. 임신한지 얼마 안되어 유난히 입덧이 심해 직원 휴게실에서 누워 있었는데, 그때 대표님이 와서 말을 걸었다.

"둘째 임신했다면서요? 몸 조심해요. 원하는대로 출산휴가, 육아휴직 승인할게요. 대신 1년 후에는 꼭 복직해야 합니다."

나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같은 비슷한 말로 대답을 했던 거 같다. 진심이 1도 담기지 않은 말이었지만 사회생활 좀 해 봤다고 속에 없는 말도 곧잘 한다. 침만 한번 꼴깍 삼키면 된다.


둘째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축하해주는 사람은 가족 빼고는 없었다. 별의 별 말을 다 들었다. "어떻게 둘째 가질 생각을 해? 외국물도 먹고 해서 똑똑한 줄 알았는데 헛똑똑이네! 헛똑똑이!", "형제자매가 필요하다고 둘째 낳는건 부모 욕심이야.", "첫째 키울때도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둘째를 어떻게 가질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젊을 때 바짝 돈 벌어야 되는데 자꾸 애만 낳고 그래서 직장생활하겠어?", "요새 세상에 아들 없어도 괜찮은데 왜 둘째를 낳아?","육아휴직 할려고 취직했어? 프로 육아휴직러네.".... 정말이지 끝도 없다. 난 아들 타령 한 적도, 돈 타령 한 적도 없는데 다들 넘겨짚고 혀를 끌끌 찬다.


나도 하도 들어서 안다. 애를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집값이 얼마나 비싼데 집 한칸도 없으면서 애만 덜컥 낳을 수 없고, 아이 하나당 들어가는 비용이 1억이 훨씬 넘는다던데, 애가 있으면 애한테 매여서 해외여행가고, 밤문화 즐기던 자유는 끝이다. 미세먼지에, 코로나에, 기후변화에 아이를 낳는건 이기적인 부모이다. 지구에 인구는 이미 너무 많고, 효도는 바라서도 안되고, 노후는 결국 돈이고, 내 아이가 어떤 아이로 클지 모르는데 그 불확실성을 어떻게 감당하며, 나 스스로 뒷감당도 안되는데 어떻게 감히 다른 사람을 돌본단 말인가. 직장도 비정규직이고 모아둔 돈도 없어서 나만 겨우 먹고 사는데 어떻게 식구를 늘린다는 거야.


그런데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도 저 말이 유일한 진실인 줄 알고 애를 안 낳고 살았다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아이는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예전에 내가 보던 세상은 12색 크레파스로 그릴 수 있었다면, 지금은 총천연색, 그러니까 60색 크레파스로 그릴 수 있을 정도이다. 예전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희노애락으로 표현한다고 하면 강도 2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강도 200 수준이다. 좋을때는 너무 좋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고, 슬플 때는 땅이 꺼져서 그 밑에 깔려 죽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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