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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젖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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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n 10. 2020

임신, 출산, 수유, 이보다 여성스러울 수 있나요(3)

아기가 태어나니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가슴이었어요. 신생아는 눈 감으면 잠자고, 눈 뜨면 젖먹고, 그 두 가지밖에 안하거든요. 처음에는 제 가슴에서 어떤 액체가 나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아기가 빨아먹으면서 젖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기가 힘껏 빨아먹고 나면 젖이 홀쭉해져요.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젖이 도는 느낌이 들고 젖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해요. 그러면 아기가 또 빨아먹고, 저는 또 젖을 생산하고... 

젖 생산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어요. 과연 이 젖이라는 액체에 영양분이 있을까? 아기가 이것만 먹고 클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신기한게도 아기는 젖만 먹고도 쉬를 하고 똥을 누었어요. 젖만 먹는데도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몸무게가 점점 늘어났어요. 100일 때는 8킬로 조금 넘었는데 스스로 어찌나 대견하던지요. 내 몸이 이렇게 생명의 액체를 만들어 내다니! 식물 하나 제대로 키워본 적 없었고 키우기 쉽다는 화분도 죽이기 일쑤였는데, 내가 만들어낸 젖으로 아기를 키우고 있다니! 요즘 시대에 모유수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뿐더러, "왜 분유 안먹이고 젖 쳐지게 모유수유를 해?"라는 핀잔밖에 못 듣지만 저 스스로한테는 이제까지 이뤄낸 어떤 학문적 성취, 사회적 성취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벅찬 일이었어요. 

임신, 출산, 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 몸은 항상 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자궁과 가슴(유방)은 항상 그 자리에서 임신이 되면 그 기능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더라고요. 자궁에서는 달마다 난자 하나씩 성숙시켜 내보내는데 정자하고 못 만나서 임신이 안되면 결국 생리라는 피를 쏟아내지요. 제 가슴은 워낙 한국형 표준 AAA 크기라서 가슴띠만 둘러주고 별 신경 안쓰고 살았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제대로 기능할 준비는 하고 있었더라고요.

임신, 출산, 수유를 안했더라면 제 자궁과 가슴은 그 기능을 해보지 않고 지나갔을 거에요. 임신, 출산, 수유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성역일지도 몰라요. 남자들 까짓것들이 아무리 잘났을지언정 임신, 출산, 수유를 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불리할 때마다 남편한테 임신 부심, 출산 부심, 수유 부심을 부립니다. 그러면 항상 남편은 의문의 1패.

"야! 니가 뱃속에 애 열달 넣고 다녀봤어? 그 작은 곳으로 애기 낳을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진짜 죽어! 그리고 내 젖 먹고 우리 아기가 이만큼 컸어! 남편 니가 한게 뭐야? 애기 만들때 조금 거든거, 그거 말고 더 있냐? 할말 있으면 해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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