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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n 09. 2020

임신, 출산, 수유, 이보다 여성스러울 수 있나요(2)

"그 때 그 의사가 들어오는데 이제 우리 부인 살았구나 싶더라고. 구세주가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 조금 이따가 가위로 '싹뚝' 회음부 절개하는 소리가 들리고, 뭐가 물컹물컹 나오는 소리가 들려. 무서워서 보지는 못했는데 간호사들이 급하게 솜으로 계속 틀어막고.. 나는 애 낳는데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리는 줄 몰랐어. 난 그렇게 많은 피를 보니 기절할 것 같더라고. 근데 애기 울음소리가 들려. 그리고 나보고 아빠라고 가위로 탯줄을 자르라고 하는데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어."

남편이 기억하는 출산의 순간입니다.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엄청 아팠고, 계속 용을 썼고, 애도 살고 엄마인 저도 살려면 이 순간이 어떻게든 지나가야 해결되니 그저 간호사들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에요. 낳자마자 아기를 제 품에 안겨주는데, 아기가 너무 크고 통통해서(3.6킬로) 어떻게 이렇게 큰 애가 내 뱃속에 들어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어요. 낳고나니 날아갈 것 같았어요. 열달동안 품고 있던 아기가 나오고나니 후련한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회복실로 옮겨서 미역국도 한 사발 먹고 있는데 배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간호사가 와서 "지금부터 자궁 수축될 거니깐 계속 배 문지르면서 마사지해줘야 해요"라며 남편한테 당부하고 갔고요. 남편은 자기가 애 낳은것도 아닌데 기진맥진해서 잠 좀 자야겠다며 집에 쉬러 갔어요. 친정엄마하고 제 여동생이 마사지를 몇시간동안 계속 해 주었어요.    

아기 낳은지 3일째 되는 날, 남편하고 저하고 아기를 안고 집에 갔어요. 병원문을 나서는데 남편하고 저하고 서로 안고 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던 기억이 나네요(지금은 서로 안 안으려고 싸움). 병원 앞에서 세 식구가 된 기념사진도 찍고요. 아기는 병원에서 싸준대로 속싸개로 꽁꽁 싸여 있었는데 남편이 "우리 애기가 이렇게 싸여 있으면 답답할 것 같애. 풀어줘야지."하면서 풀어줬는데 그때부터 사이렌소리를 내면서 한참동안 울기 시작했어요. 초보 부모는 어쩔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유투브에 '속싸개 싸는법' 이런 거를 검색해서 다시 엉성하게 싸 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아기는 다시 진정을 되찾았고요. 저는 엉성한 자세로 아기한테 젖을 물려보려 했지만 아기는 뭐가 불편한지 울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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