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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Dec 06. 2020

아이는 그럴려고 갖는게 아니다

애엄마가 된지 어느덧 7년째다. 세월이 어찌어찌해서 지났다. 육아 우울증이네, 가사/육아 분담이 불공평하네, 경력단절이네, 어쩌고 저쩌고 울고 짜고하며 지나온 세월동안 아이들은 믿기지 않을만큼 커 버렸다. 첫째는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세살배기 둘째는 한참 말배우느라 눈만 뜨면 "이거 뭐야?"만 외치고 다닌다. 네식구 둘러앉아 조그만 손으로 숟가락질 부지런히 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넋놓고 바라볼 정도로 예쁘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 우리 남편 눈에서도 꿀 떨어지고 있으니까. 10년을 만나온 남자인데 눈빛만 봐도 척하면 척이다. 사실 나도 남편하고 같은 마음이다. '둘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데 셋이면 얼마나 더 좋을까?'

 

이 참에 셋째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보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클 줄 몰랐어. 어느새 커서 이렇게 둘이 같이 노는데 정말 이뻐 죽겠어."

"그러게.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두 사람한테서 저렇게 이쁜 것들이 나왔나 몰라."

"맞어, 둘째 아기 때 꼬물꼬물하던 기억 나? 언제 저렇게 컸는지 진짜 크는게 아까워."

"첫째, 둘째, 아롱이 다롱이 다른것도 신기하고. 셋째는 또 얼마나 이쁘게 나올지 궁금하다."

"근데 자기는 진짜 셋째 괜찮아? 옛날에 결혼 생각도 없던 사람이... 애 낳고 자유가 없다고 맨날 한탄하더니.."

"그때는 젊었지. 애가 이렇게 빨리 크는줄도 몰랐고. 나는 상관없어. 셋째가 있으면 좋지! 어떻게 생겼을지도 궁금하고, 얼마나 귀엽겠어? 물론, 나는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어와야겠지만! 차도 더 큰 걸로 바꿔야 되고. 집이야 뭐 지금 사는 집에서 복닥복닥 다섯식구 살 수 있을 것 같고. 근데 나보다 당신 생각이 더 중요하지. 나야 뭐 하는게 있나? 당신이 임신하고 배불러서 애 낳고 고생해야 되는데.."

"그러게 말이야. 또 배불러서 뒤뚱뒤뚱 다니고, 악쓰면서 죽을 위험 무릅쓰고 애 낳는거 진짜 안하고 싶은데... 그래도 뭐 그거야 잠시면 끝나니까 괜찮은데. 그만큼 아기가 너무 이쁘니까! 근데 그런것보다는 내가 겁나는 건 사람들 시선이야. 셋째 가졌다하면 아마 사회적으로 매장 당할껄? 이번에도 내가 육아휴직 들어가는데 관리자가 안 좋아했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셋째는 갖지마세요' 그러던데.. 셋째 낳으면 또 2년은 집안에 들어앉아야돼. 요새 세상에 아무도 애 안 낳는데, 왜 나혼자 셋이나 낳아... 사람들이 아이 미래는 생각 안하고 애만 싸지른다고 손가락질 할건데, 내가 왜 그런 수모를 당해..."


남편은 어차피 임신하고 출산은 나의 몫이니 내 결정에 맡긴다며, 본인은 셋째가 온다면 언제든 환영이라 하고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 되었다. 애엄마가 된지 7년, 이제는 애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기에 나도 셋째를 무작정 환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안해봤으면 몰라도, 해봤는데 그 구렁텅이에 다시 제 발로 들어가는건 아무래도 고심해 보게 된다. 그 육아라는 구렁텅이라는게 고통만 있다면 뒤도 안 돌아보겠지만, 말로 표현못할만큼의 어마어마한 행복과 기쁨, 충만감이 함께 오기 때문에 밤잠을 뒤척일만큼 생각이 많아진다.


일단, 나이라던가,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 지금 내나이 서른다섯인데, 엄청난 노산은 아니다. 요즘 서른다섯에 초산도 많은데, 서른다섯에 셋째면 그렇게 나쁜 조건은 아닐테다. 건강이야 자만은 금물이지만, 여지껏 큰 문제는 없었다. 첫째, 둘째, 모두 자연분만했고, 각각 2년 가까이 모유수유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크지는 않다. 우리 부부는 아직 젊고, 지금은 아이 키우느라 잠시 쉬고 있지만, 아이들이 조금 크면 맞벌이 계속 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모든 걸 척척해 줄만큼 여유있는 대단한 뒷바라지는 못해주겠지만, 아이를 아예 못 키울만큼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는 않는다(고 믿고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셋째를 주저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다. 애를 낳고보니 가장 실감나는 말은 '애 낳은 죄인'이었다. 애가 있으면 사회에서 격리를 당하는 일이 정말 많다. '애엄마가 집에 있어야지, 애를 데리고 왜 이런 데를 와?'라는 눈치를 정말 많이 준다. 카페든, 식당이든, 버스, 지하철, 비행기 등등... 아기들은 자주 울고, 움직임이 미숙해서 뭘 자주 흘리고, 넘어지고, 유모차라던가 하는 부피 큰 기구를 끌고 다니게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걸 못봐준다. 결국 애엄마는 집에 아이와 갇혀 자의반 타의반으로 독박육아를 하게 된다. 애엄마를 받아주는 곳은 고작 인터넷 맘카페뿐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애가 아파서 조퇴를 한다거나 하면, 24시간 상주 도우미를 쓸 능력도 없는 사람이 직장일을 한다고 투덜거린다. 왜 나한테는 '애 낳을 능력도 없는 사람이 감히 애를 낳았냐'는 말로 들리는지... 


내가 살고 있는 시에서 저출산을 타파하기 위해서 얼마전에 정책을 새로 내놓았다. 주말, 휴일 없이 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으로, 맞벌이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만들었단다. 날짜, 시간 상관없이 언제든 원하면 맡기면 된다는데, 나는 헛웃음이 났다. 부모보고 언제든 애 맡기고 일만 하라고? 그렇게 애 맡긴 부모는 행복할까? 그렇게 맡겨진 아이는 행복할까? 부모는 이렇게 애 맡기기가 쉬우니 또 둘째, 셋째 낳아야지 싶을까? 아이가 크는 모습은 넋놓고 바라보고 있을만큼 황홀한데, 그 기쁨을 부모에게서 다 빼앗아가 버리고 출산을 바라는건 어불성설 아닐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한테 물어보라. 개, 고양이 키우는 것도 사람 키우는것만큼 돈도 많이 들고, 공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키운다. 키우면서 정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편의와 돈만 따져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한다. 


달리 보면 저출산 타개책은 너무나 쉽다. 애를 아이 부모('엄마'만이 아니다)에게 키울 수 있게 해주고, 부모가 그 기쁨을 향유하게만 해주면 둘째, 셋째 낳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둘째를 낳았고, 셋째를 고민중이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애 낳은 엄마를 조금만 대우해주면 된다. 대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별만 안해도 좋겠다. 애만 낳으면 죄인 취급 받는데, 예전처럼 일상생활도 못하고 몇 안되는 '키즈 전용' 공간만 허락되거나 아예 집에 들어앉아야 하는데 누가 제발로 이런 취급 당하고 싶을까? 직장 생활도 해 보았지만 아이 낳고 키우는 시간만큼 내 생애 이토록 치열하게 열심히 산 적이 없었는데, 왜 유독 육아와 애엄마는 평가 절하하는지 모르겠다.   


가끔 길을 지나다가 한자녀더갖기운동본부 같은 곳에서 중년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포스터를 보면 기가 안 찬다. 결국 아이 낳기를 결정하는 사람은 여자들이다. 임신, 출산을 겪어본 엄마들이 왜 둘째, 셋째를 주저하는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낳으면 천만원 준다, 휴일 24시간 언제든지 맡기고 맞벌이 하세요'는 번지 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아이는 그럴려고 갖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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