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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22. 2021

아이를 그토록 미워하면서 아이를 낳으라니

애 안 낳는 이유로 엉뚱하게 헛다리만 짚고 있다

그 날도 아이들과 즐겨 찾던 카페에 별 생각없이 들렀다. 그런데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평소에 못보던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당신 아이의 웃음소리가 타인에게는 고통입니다’ 그 문구를 보자마자 내 눈을 의심했다. 울음소리도 아니고, 웃음소리가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분명 ‘웃음소리’였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우리 집 아이들이 영문을 모르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카페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괜히 웃기라도 할까봐 긴장되었다. 카페 주인장의 설명은 이러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노는 소리 때문에 주변 이웃들에게 민원이 들어와서 하는 수 없이 노키즈존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들과 그 카페를 묵묵히 나왔다. 일곱살 첫째는 왜 그냥 나가냐고 재차 물었다. “아이들은 여기 오면 안된대.” “왜 아이들은 안되는데?” 뭐라고 더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여기 어른들이 너희들 웃음소리 때문에 짜증난대’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카페 창가 발치에 앉은 어른들이 깔깔거리며 수다 떠는 모습이 무심히 보였다. “엄마도 잘 몰라.”하면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때때로 우리는 덜 솔직할 때 덜 상처받는 법이다. 아마도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그 곳을 갈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와 갈 수 없는 곳은 하나 더 늘어났고, 우리는 집안에 들어앉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문득 1909년 중국 상해 영국 조계지에 세워진 영국 공원(지금의 황푸 공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공원 입구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 금지’라고 쓰여 있었고 그 문구가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엄청난 분노와 항의를 불러 일으켰었다. 당시 공원 입구에서 터덜터덜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중국인들 심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사실 지난 8년동안 엄마가 되고나서 겪은 설움이야 차고 넘친다. 첫째를 낳고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직장 면접에서 둘째 낳을 계획이 없다는 전제를 누누히 확인시키고서야 겨우 취업이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둘째가 생겼을 때 직장동료와 상사들에게 별의별 말을 다 들었다. “계획 없이 생긴 거에요? 엄청 야하네.”, “저는 24시간 도우미 쓸 능력 되는 사람만 애기 낳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업무에 지장 있어서 주변 동료들에게 피해 주잖아요.”, “셋째는 낳지 마세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내 처지에 함부로 입을 댔다. 축하를 바라지도 않았지만, 축하는 커녕,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득실거렸다. 직장인으로서 업무상 지적 받는 일이 없었는데, 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니 다들 득달같이 달려와서 돌 하나라도 더 던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직장 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 시선이 곱지 않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가만히 있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한참 알아가는 중이다. “이건 뭐야? 왜?”하면서 끊임없이 묻고, 말을 배우고,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어른들에게는 아이들 소리가, 그 서투른 작은 손짓과 발짓이 눈에 거슬린다. "애 있는 사람이 왜 카페를 와? 왜 식당을 와? 왜 지하철을 타요? 아줌마! 애를 왜 데리고 나와요? 애가 울면 어떻게든 좀 하세요! 다른 사람한테 피해 좀 주지 말고!"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다.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내 모습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자기들은 단 한번도 미숙한 아이였을 때가 없었다는 듯, 태어나서부터 멀쑥한 성인으로 태어났다는 듯, 본인들은 이렇게 쓸데없이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을 거라고 그저 의기양양했다. 내 처지는 그야말로 ‘애 낳은 죄인’이었다. 


나 또한 애 낳기 전까지는 꿀릴 것 없는 당당한 사회인이었다. 지금도 혼자서 외출하면 아가씨인 줄 알고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그런데 애만 데리고 나서면 너도나도 아무나 함부로 입을 댄다.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애를 낳았냐는 타박에서부터, 외동으로 키우면 안되고 형제자매를 만들어 줘야 한다거나, 딸을 데리고 나가면 남의 집에 대를 끊어서는 안되니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아들을 데리고 나가면 요즘은 딸이 대세라고 딸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아들 딸 섞어서 애 셋 낳았다고 하면 요새같이 좋은 세상에 애를 하나만 낳고 치우지, 왜 이렇게 무식하게 많이 낳았냐고 의견도 참으로 다양하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흥미로운 부분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칭찬일색이라는 점이다. “어머나, 아빠가 자상하기도 하네요. 아빠하고 단둘이 나왔네.” 남편에게는 형제자매를 어떻게 낳으라는 둥 일절 입을 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애엄마에게 유난히 박하다. 애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사회적 지위가 확 강등되는 느낌이다. 예전에 멀쩡히 잘 이용하던 대중교통도, 공공장소도 애엄마가 되고 나면 가기 어려워진다. 노키즈존과 따가운 눈초리와 각종 잔소리로 오지 못하도록 막아 놓는다. 결국 아이와 애엄마가 갈 수 있는 곳은 특수한 몇몇 곳에 국한된다. 키즈카페나 놀이터, 공원, 마트, 유아 전용 식당 그 정도다. 그렇게 애엄마는 집안에 들어앉는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집안에 아이와 격리된다. 코로나가 심할 때 밤낮없이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집안에서 머물라’던 캠페인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애엄마들은 진작부터 애하고 집에 격리되어 있었다. 이토록 애엄마를 초라하게 만들어 놓고서는, 멀쩡한 사회인을 집에 격리되어 독박으로 애를 보도록 해놓고서는 애를 낳으란다. 누구든지 3일만 혼자서 집에 갇혀서 살림하며 애 보고 나면 다들 두 손, 두 발 도망 가고 없을텐데? 아이 낳는 일을 쉽게 말하지만, 낳아본 사람은 안다. 출산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는 것을. 멀쩡하게 남자들과 동등하게 일 잘하던 사람이 애엄마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별의별 소리와 불이익을 당하고, 어떻게든 직장과 가사일, 육아를 해내려고 본인의 극기와 한계를 시험하며 온갖 발버둥을 쳐 보다, 결국은 두 손 두 발, 백기를 들고 직장을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 앉아야 한다. 이렇게 허무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아이와 집안에 갇힌다. 온갖 의무로만 점철된 엄마의 몫을 하며, 하루종일 집안에서 동동거린다. 사회에서 멀쩡하게 잘 지내던 사람이 애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팔다리가 집안에 다 묶여 집밖을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집사람으로 주저앉는다. 이 정도 변화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함부로 입을 놀린다. 애 안 낳는 이유로 엉뚱하게 헛다리만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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