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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Aug 05. 2021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결혼할 거에요?

남자로 태어나면 결혼하고, 여자로 태어나면 결혼 안한다

그 날도 어김없이 놀이터에서 놀이터 장승 노릇을 하던 참이었다. 우리 집 아이 둘은 놀이터를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녔다. 나는 그늘 벤치에 앉아 아이들 물병과 간식을 챙기고 앉아 멍 때리고 있었다. 물론, 마음놓고 멍 때리지는 못했다. 네살배기 둘째가 위험한 행동을 하다가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 눈으로는 둘째를 계속 좇고 있었다. 아차 하면 언제든 달려가서 둘째를 잡아야 하니까.


그 때였다. 이웃집 11살 여자아이가 신나게 그네를 타면서 벤치에 있는 나를 큰소리로 불렀다. 

"이모! 이모!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모는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결혼할 거에요?" 

나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남자로 태어나면 결혼하고, 여자로 태어나면 결혼 안한다!" 

순간 놀이터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대답이리라.


나는 외국 남자와 결혼했기에 시댁 제사나 시어머니가 시집살이를 시킨다던지 하는 문제는 없었다. 다만, 시댁 방문이 매우 잦았을 뿐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겼는데, 손주를 본다는 명목으로 시어머니는 일년에 두어번씩, 한번 오시면 3주 정도 우리 집에 지내다 가셨다. (참고로 프랑스는 휴가가 엄청나게 길다. 일반적으로 1년에 휴가가 8주~11주 된다. 게다가 공휴일 제외하고 휴일이 그만큼이나 길다. 그리고 친척 집이 남쪽 프랑스 시골이라면 휴가나 방학 때 오랫동안 머무는 것에 관대한 편이다.) 


시어머니가 집안일과 육아를 많이 거들어 주셨고 그 부분은 참 감사했다. 하지만 전혀 가깝지 않은 어른과 한 집안에 오랫동안 같이 있는 것 자체가 가끔은 부담스럽거나 버거울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손님이고 이부자리나 음식에도 신경 쓰였고, 며느리이다 보니 어른의 심기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외국까지 먼 걸음으로 오셔서 생판 모르는 외국인 며느리와 지내기가 편치 않으셨으리라. 어쨌든 내 아이들에게는 하나뿐인 할머니이고, 평소에 자주 손주를 못 만나는 시어머니가 안쓰러워 오실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정성껏 대해 드렸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2년째 못오고 계시긴 하다.)


사실 시어머니 방문 정도야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좋게 좋게 넘길 수 있지만, 애엄마가 되고 가장 억울한 것은 직장을 잃은 일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직장이고, 연봉이고, 돈인데,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그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토록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3때 죽도록 공부하고, 좋은 대학 가고 유학까지 다녀와 온갖 자격증을 따고, 공부하고, 준비해서 취업 했던 것도 결국 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었다. 아이들이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렵게 쌓아왔던 직장과 성과를 포기해야 했다. 어릴 적 "여자는 공부 많이 할 필요없다"던 우리 할머니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30대 중반인 내가, 딸을 둘이나 키우는 내가 그 말에 공감하고 있자니 새삼 씁쓸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여자라서 못하는건 없다고, 불가능은 없다고, 어떻게든 외주를 주어가며(각종 도우미와 어린이집, 주변 도움 등) 몇년을 버티고 버텨 보았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남편도 육아에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만큼 같이 했지만, 그렇다고 남자에게 자궁과 젖이 달려 있지는 않았다.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까지 남편이 대신 해줄 수는 없었다. 친정아버지는 날더러 "할 수 있다! 너는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다! 국토대장정도 했던 사람인데!"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지만 오히려 나는 "차라리 국토대장정을 더 하라면 하겠어요. 안되는 건 안되는 거에요..."라고 자조했다. 결국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적합한 직장으로 이직했다가 프로육아휴직러라는 욕을 들어먹으며 무기한 육아휴직중이다. 


나의 인생 시계는 7년전 첫아이를 낳았던 그 시점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지금 뱃속에는 셋째가 자라고 있다. 앞으로 3년간은 또 집에서 꼼짝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게 왜 애를 낳아서 그 고생이야?", "나는 진작에 현명하고 똑똑해서 아이를 안 낳았지! 너는 바보 등신 천치라서 계속 애만 낳고 있구나!"하고 조롱하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못 꺼낸다. 그저 이 사태의 공통책임자인 함께 늙어가는 남편과 매일 고군분투할 뿐이다.


으아,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걸까. 그런데 이 와중에 애들은 또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내 시간과 커리어를 갉아먹는 이 귀여운 악동들 때문에 마음 약해져서 하나 낳고, 둘 낳고, 또 셋을 낳는다. 요즘 시대에 뒤떨어지게 영악하고 독하지를 못해서 이렇게 지지리 궁상처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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