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프랑스 아이인가, 한국 아이인가? (3)

by 이주리

아이가 두돌쯤 되면 말귀는 거진 알아듣고, 단어도 제법 알고, 간단한 문장까지 구사하기 시작해요. 저희 첫째는 말이 빨랐어서 두돌 때 노래를 부를 정도였어요.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그 때의 감격이란! 내가 너한테 수없이 노래 불러주고, 책 읽어주고, 말 걸어주고 할때 과연 얘가 알아듣기는 하는건가 싶어 답답했는데, 어느새 나한테 말을 하다니! 니가 진짜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아이는 프랑스말을 못했어요. 프랑스말 못하는건 너무 당연했죠. 한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아이를 돌본 사람은 저하고, 외할머니, 어린이집 선생님, 아이돌보미 아줌마, 만나는 사람은 죄다 한국사람이었으니 한국말을 하는 건 당연했지요. 아이가 유일하게 접하는 프랑스사람은 아빠인데, 워낙 직장일에 바빴어요. 한국 직장에 다니니 새벽같이 나갔다가 회식하고 밤늦게 들어오고 야근하고 그랬으니 아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았어요. 게다가 그때 남편은 주변 친구들이 다 미혼이고 하니(남편 당시 서른살) 같이 어울려서 해외여행가고, 낚시가고, 술마시러 다니고, 애는 저한테만 맡겨놓고 얼굴 보기가 힘들었지요. 그때가 저하고 사이가 가장 최악이었을 때였고요.


그런데 이놈의 남편이 아이가 프랑스말을 못한다고 서운해하는 거에요.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내 딸처럼 안 느껴진다" 라며 입을 찢어놓고 싶은 말이나 해대고 있었어요. 아이가 어떻게 프랑스어 독학이 되나요?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건데 지가 한 짓은 생각도 안하고...


근데 생각보다 그게 큰 문제였어요. 얘는 프랑스인이기도 하고, 한국인이기도 한데, 두가지 언어는 당연히 해야 되는건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가 아빠를 참 많이 좋아하고 잘 따랐어요. "빠빠"(프랑스어로 "아빠"라는 뜻)를 항상 부르고, 아빠한테 엉겨붙고, 아빠하고 놀고 싶어하고... 두돌이 되니 이제 젖도 떼었고 바깥활동 하고 싶어하고 한참 뛰어다니며 놀고 싶어하는데, 아빠가 제격이었죠. 남편도 이제 본인이 아빠로서 할 몫이 있다는 것에 어찌나 우쭐해하는지, 항상 아이를 무등태워서 나들이 다녔어요. 전 그 나들이에서 빠졌고요. 덕분에 저도 좀 쉴수 있고, 제가 없어야 아이가 아빠하고 프랑스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프랑스말이 늘기 시작했어요.


아이 프랑스말이 특히 많이 늘었던 계기는 세돌즈음에 아빠하고 단둘이서 프랑스에서 보름 정도 가 있었을 때에요. 아이가 처음에는 말을 다 못 알아들어 영 답답해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말문이 터지더라고요. 아빠가 육아휴직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니 프랑스어가 아주 능숙해졌구요. 7살이 된 지금은 한국어와 프랑스어 둘다 그 나이 또래만큼 유창하게 합니다.


지금은 7살 첫째아이가 3살 둘째아이한테 프랑스말을 가르쳐줘요. 한국어하면서 놀때도 있고, 프랑스어하면서 놀때도 있고. 제 딸이지만 저렇게 두가지 언어를 왔다갔다 하며 말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네요. 한국인이기도 하고, 프랑스인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한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닌 우리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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