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여전히 사랑스러운 이유

by 이주리

첫째가 4살 무렵이었어요. 둘째 임신을 해서 몸은 무겁고, 직장일은 직장일대로 해야 하고, 체력이 그야말로 바닥난 상태였어요. 주말도 아니고 평일 저녁이었는데 남편이 친구들하고 술 한잔 하러 간다고 절더러 술집까지 태워달라고 했어요. 저희집은 차 한 대밖에 없고, 시골에 살아서 택시도 없고, 대리운전도 안 오거든요. 제가 술집까지 태워줘야 남편이 택시타고 집에 들어올 수가 있어요(들어올때는 택시가 승차거부를 못해요). 첫째 혼자만 집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남편 술 한잔을 위해서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시내까지 움직였습니다.


남편이 "고마워"하고 내리는데, 갑자기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더라고요. '나는 지금 너무 힘들고 지치는데, 그래도 이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밥을 해서 첫째를 먹이고, 뒷정리하고, 얼른 잠들어야 내일 아침 출근할 수가 있는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걸까?' 그래서 그 길로 바로 백화점을 갔어요. 백화점에 가서 첫째가 그렇게 소원이라며 입고싶어하던 공주 원피스를 사 주었어요. 피팅룸에 가서 아이를 입혀보니 진짜 공주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더군요. 환하게 웃으며 공주처럼 뺑그르르 돌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동안 직장생활한다고 동동거리며 서러웠던 고생이 싹 잊혀 졌어요. 나는 후줄근해도 우리 아이가 빛나니 마치 내가 빛나는 것 같았어요. 여태까지는 돈 아낀다며 아이 옷도 여기저기서 얻어 입혔었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리가 자기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하고 가뭄에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잖아요. 아이 입에 오물오물 밥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밥도 안먹었는데 배가 불러요. 오물오물하는 것만 봐도 귀여워 죽겠고, 그저 웃음이 나요. 아이 사진이나 동영상 보면서 너무 귀여워서 히히덕거리기도 해요. 이런 걸 내리사랑이라고 한대요. 저한테 이런 감정이 있을 줄 몰랐어요. 1도 계산이 안되고 그냥 있는대로 다 퍼주고 싶어요. 남편도 물론 사랑하지만 그 사랑하고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사랑이에요. 남편도 사랑스러운데 그건 우리 아이 아빠이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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