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타이밍이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도저히 사랑을 안하고는 못 배기는 그런 순간 말이다. 그 시절 우리가 그러했다. 추운 겨울날 중국 베이징에서 스물넷 한국 여자와 스물다섯 프랑스 남자가 배낭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이국적인 중국 땅에서 더더욱 이국적인 사람을 만났다. 스물넷, 스물다섯 그 무렵은 어느 누구라 할지라도 제 인생에서 가장 생기가 넘칠 때가 아니던가. 마침 둘다 싱글이었다. 프랑스 남자는 그대에게 한눈에 반해 버렸다며 눈물까지 보여가며 운명적인 사랑을 고백해 왔다. 나에게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사랑 표현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두려웠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구제해 줄 것만 같았다. 도무지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상을 지냈지만, 여전히 연락을 했다. 이메일로, 메시지로, 전화로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였다. 남자는 프랑스 사람이고, 나는 한국인인데, 남자는 한국말을 못하고, 나는 불어를 못했다. 결국 영어라는 제3국의 언어로 마음을 주고 받았다. 이 사람을 만나려고 내가 여태 영어를 배웠구나 싶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 남자와 사랑을 하라고 계획해 놓은 것만 같았다. 내 삶은 이 남자와 사랑을 하려고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우리는 무지했고, 순진했으며, 사랑인지 환상인지에 푹 빠져 있었다.
지금처럼 서른넷, 서른다섯 나이에 그렇게 만났데도 그렇게 뜨겁게 사랑했을까? 옆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폰에 고개를 박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보니 아마 결혼까지는 안 갔지 않겠냐고 심드렁하게 응수한다. 아마, 그랬겠지. 호감은 오고갔을지 몰라도 아마 여행길에서 잠시 스쳐간 추억 정도로 지나가고 잊어 버렸겠지. 아니면 사랑 비스무리한 감정을 조금 갖고있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결혼까지는 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운명 같은 사랑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는줄로만 알았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로미오와 줄리엣에 한껏 빙의되어 있었다. 직장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 시간은 넘칠만큼 많았다. 빈털털이 처지에 사랑 나부랭이를 믿고 지구 반대편까지 줄기차게 다녔다. 돈이 없어 절절 매면서 라면 한그릇을 겨우 둘이서 나눠먹는 처지였어도 서로 얼굴만 마주치면 그저 까르르 웃음이 났다. 가진거라고는 열정뿐이었던 청춘남녀는 그렇게 불같은 사랑을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떨어져서 그리워만 하다가, 일년에 한두번 잠시 만나고 그리워만 하는 사이로 남을텐가. 여자는 이 남자가 이 관계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 궁금했다. “나한테 언제 프로포즈 할 거야? 우리 결혼 안할거면 헤어지자.” 남자는 그 말이 청천벽력처럼 들렸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 파리 출신 남자였다. 결혼은 자기 할머니 시대 사람들이나 하는 케케묵은 제도였다. 심지어 자기 부모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주변에도 죄다 동거하는 커플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결혼하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고, 본인 인생에서 한번도 결혼이란 선택지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 남자의 세계관을 한손에 쥐고 마구 흔들어 버린 거다. 남자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웠지만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이 여자를 잃을 수는 없다는 마음에 급히 결정했단다.
남자가 결혼하겠다는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니, 남자 할머니는 경사라도 난 것처럼 기뻐하셨다. “우리 손자가 결혼을 한다니! 여자를 한번도 데리고 오지 않아서 게이가 아닌가 걱정이었는데”라고 하셨다. 남자 어머니는 “결혼하겠다니 조금 갑작스럽지만 축하한다”와 같은 극히 프랑스 파리지앵다운 말로 시크한 축하를 했다.
여자 부모는 외국 남자와 결혼이라는 운을 떼자마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직도 그 놈을 여태까지 만나고 있었냐? 정리한 줄 알았는데… 어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배신할 수 있냐!”며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한 것처럼 지독히 혼이 났다. “너 같은 자식 없다. 니 맘대로 살거면 집을 나가라!”고 하시길래 그 말을 따랐다. 여자는 터덜터덜 부모집을 나와서 작은 자취방에 혼자 지냈다.그렇게 여자는 부모와 일년 가까이 연락을 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지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여자 부모는 조건부 승낙을 내걸었다. “남자가 한국에 와서 직장을 잡고, 한국에서 사는 조건으로 결혼을 승낙한다!”
사랑에 눈먼 남녀는 일생일대의 소원이 이뤄진 듯 환호하며 그때부터 눈에 불을 켜고 남자 직장을 찾았다. 인생의 목표가 한국 직장 찾기라도 되는 것처럼 샅샅이 찾았다.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귀인을 만나 한국으로 파견 근무를 오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되었는데 부모도 더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부모는 울며겨자먹기로 결혼을 승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