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임신이면 어쩌지? 그러면 내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가는 거지? 설마 이렇게 쉽게 임신되지는 않을거야? 그런데 말이야. 글쎄, 남편이라는 작자가 뭐라는 줄 알아? 임신일리가 없대!”
마크가 묻지도 않았는데 투덜대고 있었다. 답답한 내 마음을 모조리 털어 놓아 버렸다. 평생 볼까 말까한 네덜란드에 있는 40대 동료 아저씨에게는 무슨 이야기든 다 털어놓아도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대나무 숲에 가서 고함이라도 치듯이 마크에게 모두 쏟아내 버렸다. 묵묵히 듣고 있던 마크는 연신 축하한다는 말과 아이를 키우는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덧붙였다. 말 자체는 별로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한껏 상기된 마크 표정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 인생에 좋은 일이 닥쳤구나, 하긴 결혼도 했는데 아이가 생기면 좋은 일이지 싶어 그 길로 기분 좋게 호텔로 들어가서 푹 잤다.
다음 날, 영국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속을 밟으러 가는데 아차 싶었다. 임신했(을지도 모르)는데 검색대 지나가도 되나? 임신 안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검색대에 서 있는 여자 직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제가 임신일지도 몰라서요. 임산부가 이 검색대 지나가도 되나요?”
그 여자 직원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듯 대수롭지 않게 나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직접 검색을 했다. 임산부는 검색대는 통과하지 않아도 된단다. 임신이라는 게 나한테는 하늘과 땅이 뒤바뀐 것처럼 큰일이지만, 이 여자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모양이다. 하긴 하루에 수도 없이 임산부를 만나겠지…
어둑어둑해서야 영국 런던 시내에 도착했다. 난생 처음 밟아보는 영국땅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만큼이나 비슷하게 생긴 생소한 영국 건물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생경한 풍경이 임신한 내 상황만큼이나 어색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혹시나 몰라 다시 한번 테스터기를 해봤더니, 이번에는 바로 두 줄이 나왔다. 임신이 확실했다. 남편이라는 호칭도 어색한 새신랑에게 전화해서 임신했는데 어떡하면 좋냐며, 영국 런던 여행이고 뭐고, 당장 한국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울먹거렸다. 남편이 급하게 이래저래 알아보더니 이렇게 급하게는 항공권 날짜 변경이 도저히 안된단다. 예정대로 4일동안 영국에 있다가, 조심해서 한국에 가는걸로 하잔다. 돌아다니지 말고 호텔에만 가만히 박혀 있으면서 몸조심하다가 한국에 오라며, 그제서야 축하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저께는 자기도 너무 예상치 못해서 놀랐다며, 임신일리가 없다고 말해서 미안하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