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듣고 왔는지 남편이 초창기에는 안정을 최대한 취해야 하니 호텔에만 가만히 있다 오라며 당부하는 메시지를 연신 보내왔다. 그런데 좀이 쑤셔서 도저히 호텔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런던 시내라서 그렇겠지만 호텔 방은 얼마나 작은지, 겨우 작디작은 창문에 침대 하나, 화장실만 달려 있는 방이었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임신한건 알겠는데 지금 아무런 증상도 없고,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병이 날 지경이다. 안되겠다! 밖에 나가야 겠다.
나름 런던에 왔으니 버버리코트를 차려 입고 한껏 멋을 부려보기로 했다. 거울을 보며 허리를 동여매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이 옷을 언제까지 입을 수 있을까?
호텔을 나서니 런던 시내 한복판이라서 그런지 주요 여행지는 어디든 걸어서 갈 수가 있었다. 천천히 걷다보니 마침 문화해설사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재미있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지 지나가던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같이 들었다. 한참 설명이 끝나더니 본인 설명에 만족한만큼 돈을 넣으란다. (지금으로 따지면 유튜버한테 후원금 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도 지폐 몇장을 넣었다. 그 해설사에 이끌려 버킹검 궁까지 같이 따라갔다. TV에서만 보던 버킹검 궁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근위병 교대식도 보고 있자니 런던에 온 것이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아가야, 런던 구경하니 좋지?’ 속으로 우리 아기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 보았다. 열심히 기념 사진을 찍으며 나중에 이 사진보면 뱃속에 니가 있었다고, 아이가 크면 보여줘야지 하면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랫배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들고, 알싸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기가 나 여기 있으니까, 엄마 너무 무리하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오는 것만 같았다. 최대한 안정을 안정을 취하라던 남편 잔소리도 떠올랐다. 그렇다. 이제 나는 홀몸이 아니다! 예전처럼 무리해서 막 돌아다니면 안된다!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밖에 나온지 서너시간만에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항상 24시간을 48시간처럼 꽉꽉 채워서 바쁘고 열정적으로 살아오던 나한테는 휴식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영 어색하기만 했다.
아랫배가 여전히 콕콕거렸지만 그렇다고 평생 언제 영국에 다시 와볼텐가. 호텔에만 짱박혀 있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혼자 가기 막막해서 네이버 여행 카페를 찾았는데, 기차타고 캠브리지 대학으로 1일 여행할 동행자를 구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넷이서 기차표를 사면 훨씬 저렴해서 일정을 같이 할 동행자를 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내 나이 또래 3명과 마주 앉아서 몇시간을 같이 기차를 타고 갔다. 어색하지만 소개도 하고, 간식도 나눠먹고, 관심사도 나누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취업이나 여행이었고, 쉴새없이 그 주제에 관해 떠들었다. 나는 귀 기울이는 척 하고 있었지만, 실은 내 머릿속은 임신에 관한 생각으로만 꽉 차 있었다.
그렇다고 그 분위기에서 뜬금없이 임신을 대화 주제로 올릴 수는 없었다. 그건 마치 화장품과 연예인 이야기로 한참 열올리고 있는 대학생 새내기 여자아이들 앞에서 서른 넘은 예비군 아저씨가 와서 “얘들아,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해줄게!”처럼 그야말로 판 깨는 주제가 되고 말테니까. 그래서 겉으로는 그들 이야기에 맞장구쳐 주는 척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딴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서로 건너지 못할 강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으면 내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까. 나는 다시는 이렇게 자유여행을 할 수 없으리라.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 캄캄했다. 여전히 내가 임신을 하긴 한걸까 못미덥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 여행을 마치고, 일본까지 스탑오버까지 해 가면서 돌고돌아 겨우 한국땅을 밟았다. 처음 가는 신혼집에서 남편이 나를 맞았고, 신혼 침대에서 처음으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내 몸 속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남편은 지나치게 의식했다. 날더러 누워 있기만 하라고,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계속 얘기했다. 나는 아무런 증상도 없는데, 배도 안나왔고, 달라진게 하나도 없는데 너무 임산부 취급을 하니 속이 상했다. 게다가 남편은 신성한 아기 앞에서 성욕을 드러내면 왠지 안될 것 같다며 임신기간 열달 내내 금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