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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n 21. 2022

고상은 집어치워라

첫째를 낳았을 때가 스물여덟만으로는 스물일곱이었다 당시에  친구들 중에 애는 고사하고결혼한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내가 처음이었다그래서인지 내가 결혼을 하고임신을 하고아기를 낳는 자체를 신기해 했다친구들이 축하해 주러 여러번 우리 집에  주었는데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배가 부를대로 부른 모습을 신기해  따름이었다그런데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 모습에는 친구들이 당혹스러움을 적잖이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아이를 낳았어도 너무 퍼져 있으면 안되는거야다이어트도 슬슬 시작해야지너무 편한 옷만 입지 말고 옷에 신경  너무 대놓고 수유하는  아니야수유는 화장실 같은 곳에서 해야 하잖아같은 말을 잔뜩 쏟아놓고  버렸다이제  엄마가  나는 아기를 키우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차려진 밥도 제대로 못먹는 상황이라  몰골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그에 반해 친구들은 한껏 화장에원피스를 차려 입고 와서 나한테 잔뜩 지적질을 하고 갔다안그래도  낳고 나니 몸이 너덜너덜해진데다가출산하고 나면 호르몬 때문에 머리숱이 어찌나 빠지는지 속상할대로 속상할 때였는데그런 말까지 듣고나니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하소연할 친구도 없어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투정을 부렸다가만히 듣고있던 엄마가  한마디로 정리해 주셨다. “애도 안낳아본 생가시들이  안다고가들 나중에  낳았을   보라캐라!”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 안낳은 친구들이 태반이라는 점!)


아줌마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고목소리 크고드세고몸은 호리호리하거나 날씬하지도 못하고왠만한 남자 덩치처럼 어깨도 넓고꾸밀 줄도 모르고짧은 파마머리그런데  낳고 나서야 알았다아줌마들도 아가씨 때부터 원래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새끼 해먹일   먹이고 빨아 입히고사람 만들려면 공이 많이 든다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때로는 돈까지 벌어와야 한다지금 다이어트하면서 머리 세팅하고  코디하고 이럴 처지가 아니다필요하면 하루 네끼를 먹더라도 아프지 말고 힘을 내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친구 말대로  낳았다고 여성성을 포기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도  보았지만시간이 흐를수록 좌절만 더해갔다일상은 부단히 바빴고나를 꾸밀 여유는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그런데 어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아줌마보다  여성스러운 게 어디 있나임신출산보다  여성스러운건 없다! 남자들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게 바로 임신, 출산이다. (육아는 남자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아기 낳기 전에는 머리 길고치마를 입을  있었다 뿐이지스스로를 여자라고 각성할 기회는 별로  느끼고 살았다학교에서 남자들하고 동등하게 공부했고직장 다니면서 남자 여자 떠나서  인간으로서 살아왔다내가 여자였구나 자각한 것은 임신하고출산하고젖을 물리면서부터였다.


사회에서동료에서는 나를 애낳은 죄인 취급하는데 그렇다면  혼자만이라도 나를 대우해 주리라그렇게 마음먹으면서부터 내가 아줌마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누가 봐도 아줌마인 것처럼 편하게 입고말하고실실거리고 다녔다누가 직업을 물어도 주눅들지 않고 “그냥 집에서 놀아요 보는데요.” 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해줬다숫기 없던 내가 처음 만난 아줌마들하고 오늘 저녁에 뭐해먹지 라는 주제로  시간을 넘게 떠들 수가 있었다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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