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낳았을 때가 스물여덟, 만으로는 스물일곱이었다. 그 당시에 내 친구들 중에 애는 고사하고, 결혼한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 자체를 신기해 했다. 친구들이 축하해 주러 여러번 우리 집에 와 주었는데, 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배가 부를대로 부른 모습을 신기해 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 모습에는 친구들이 당혹스러움을 적잖이 감추지 못했다.
야, 아무리 아이를 낳았어도 너무 퍼져 있으면 안되는거야, 다이어트도 슬슬 시작해야지, 너무 편한 옷만 입지 말고 옷에 신경 좀 써, 너무 대놓고 수유하는 거 아니야? 수유는 화장실 같은 곳에서 해야 하잖아, 같은 말을 잔뜩 쏟아놓고 가 버렸다. 이제 막 엄마가 된 나는 아기를 키우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차려진 밥도 제대로 못먹는 상황이라 내 몰골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에 반해 친구들은 한껏 화장에, 원피스를 차려 입고 와서 나한테 잔뜩 지적질을 하고 갔다. 안그래도 애 낳고 나니 몸이 너덜너덜해진데다가, 출산하고 나면 호르몬 때문에 머리숱이 어찌나 빠지는지 속상할대로 속상할 때였는데, 그런 말까지 듣고나니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하소연할 친구도 없어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투정을 부렸다. 가만히 듣고있던 엄마가 단 한마디로 정리해 주셨다. “애도 안낳아본 생가시들이 뭘 안다고. 가들 나중에 애 낳았을 때 함 보라캐라!”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 안낳은 친구들이 태반이라는 점!)
아줌마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뻔뻔하고, 목소리 크고, 드세고, 몸은 호리호리하거나 날씬하지도 못하고, 왠만한 남자 덩치처럼 어깨도 넓고, 꾸밀 줄도 모르고, 짧은 파마머리. 그런데 애 낳고 나서야 알았다. 아줌마들도 아가씨 때부터 원래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내 새끼 해먹일 밥 해 먹이고, 옷 빨아 입히고, 사람 만들려면 공이 많이 든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때로는 돈까지 벌어와야 한다. 지금 다이어트하면서 머리 세팅하고 옷 코디하고 이럴 처지가 아니다. 필요하면 하루 네끼를 먹더라도 아프지 말고 힘을 내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친구 말대로 애 낳았다고 여성성을 포기하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도 해 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만 더해갔다. 일상은 부단히 바빴고, 나를 꾸밀 여유는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보다 더 여성스러운 게 어디 있나. 임신, 출산보다 더 여성스러운건 없다! 남자들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게 바로 임신, 출산이다. (육아는 남자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아기 낳기 전에는 머리 길고,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 뿐이지, 스스로를 여자라고 각성할 기회는 별로 못 느끼고 살았다. 학교에서 남자들하고 동등하게 공부했고, 직장 다니면서 남자 여자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왔다. 내가 여자였구나 자각한 것은 임신하고, 출산하고, 젖을 물리면서부터였다.
사회에서, 동료에서는 나를 애낳은 죄인 취급하는데 그렇다면 나 혼자만이라도 나를 대우해 주리라. 그렇게 마음먹으면서부터 내가 아줌마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누가 봐도 아줌마인 것처럼 편하게 입고, 말하고, 실실거리고 다녔다. 누가 직업을 물어도 주눅들지 않고 “그냥 집에서 놀아요. 애 보는데요.” 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해줬다. 숫기 없던 내가 처음 만난 아줌마들하고 오늘 저녁에 뭐해먹지 라는 주제로 한 시간을 넘게 떠들 수가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