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이라니요?

by 이주리

첫째를 가지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임신 중기에 으레 하는 기형아 검사를 했는데, 다운증후군 위험도가 비교적 높게 나왔다. 의사가 83분의 1 정도의 확률로 아기에게 기형아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는 그야말로 가능성일 뿐이며, 83중에 82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1에 해당할 수도 있으니 양수 검사로 유전자 검사를 하면 100%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했다. 다운증후군이 생소해서 어떠한 증세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반 아이들에 비해 지능이 낮은 편이고, 합병증이 걸리기 쉽고, 수명이 평균적으로 50살 정도로 짧다고 했다. 다른 것보다 수명이 짧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부모로서 아기가 나보다 더 일찍 세상을 떠나는걸 감내할 수 있을까? 아기가 겪을 아픔을 알면서도 내 욕심에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게 맞는걸까? 남편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다. 남편이나 나나 집안에 선천적인 장애가 없었기 때문에 한번도 예상 못해본 문제였다. 만약에 양수 검사해서 다운증후군 100%라고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할 건가? 다운증후군이라고 이 아이를 안낳는단 말인가? 이미 내 뱃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할만큼 커버린 아기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고민에 고민이 물고 늘어졌다.


며칠 후에 우리 부부는 일단 양수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기로 했다. 결과를 보고 나서 다음 고민을 계속 하기로 했다. 나는 양수검사가 정확히 뭔지 몰랐기 때문에 혼자서 별 생각없이 병원에 갔다. 간호사가 병원 침대에 누우라고 하길래 시키는대로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가 갑자기 팔뚝만한 주사기를 사정없이 내 배에 내리꽂았다. 그렇게 큰 주사기와 주사 바늘을 본건 난생 처음이었다. 우리가 흔히 피검사할 때 피뽑는 따끔한 그 정도의 양이 아니었다. 그 커다란 주사가 배를 뚫고 자궁을 뚫고 들어가더니 꽤나 많은 양의 양수를 뽑아냈다. 21세기에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양수를 주사기로 쭉 뽑아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양수검사가 이런 건줄 알았더라면 안 받았을 거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더니 그 짝이다. 어쨌든 양수 채취를 마치고, 배에 주사바늘만큼이나 큰 구멍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 반창고를 하나 붙여주고 끝이었다. 간호사는 그 구멍으로 양수가 흐를 수 있으니 최대한 며칠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라는 말을 무심하게 해주었다. 결과는 2주 후에 나온다고 했다.


집에 와서부터는 중력의 힘을 빌어 양수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직장일은 해야 했다. 나는 임신한 몸이기도 하지만,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니까. 당시 회사의 배려로 재택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해야할 업무였다. 그래서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노트북을 가져다가 일을 하면서 양수가 흘러나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생각보다 2주가 더디 갔다. 일부러 남편하고 다운증후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회사에 다운증후군, 양수 검사 어쩌고 이야기하는 것도 변명 같아서 알리지 않았다. 이미 임신한 것만으로도 회사에 눈치가 보였다.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예전 홀몸 때처럼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직장에 100% 쏟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을. 양수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초조했다. 하지만 초조해 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도 않기에 일부러 회사일에 전념했다.


2주가 되던 날, 나는 거래처 미팅 때문에 외근을 나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5시간 넘는 거리였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외근과 출장이 즐거웠다. 여행을 하는 것처럼 설레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뱃속에 아기가 생기면서부터는 이동이 버거워졌다. 그래도 회사와 동료에게 티낼 수 없었다. 회사에 임신을 겪어본 사람이라고는 나말고는 단 한명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앞으로도 임신을 안 겪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만 차 있었다. 그래, 어떻게 들어온 직장인데 이 정도로 그만둘 수는 없지, 하면서 이를 악 물고 외근을 갔다. 다음 거래처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찰나에 전화가 울렸다. 산부인과 번호였다. “산모님, 양수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아기는 다운증후군 아닌 걸로 나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 한 줄기가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온 몸의 긴장이 다 풀어지는 것 같았다. 누구든지 붙잡고 막 자랑하고 싶었다. “제 아기가 다운증후군 아니래요! 건강하대요!”라고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 덧붙이는 말

이 글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둔 부모에게 불편하게 비춰질까 조심스럽다. 애 셋 9년차 엄마로 살면서 알게된 것은 내 아이가 아픈 구석이 있다고 해도 아이는 여전히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점이다. 아이가 다운증후군이 있다 해도 남들이 뭐래도 내 눈에는 다운증후군 자체가 크게 안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내 아이는 그저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아이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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