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부터 참 치열하게 살았다. 거울 볼 틈도 없이. 어느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미간 주름이 심하게 졌다. 나이가 고작 서른여섯인데(만으로는 서른넷) 수심이 가득한 내 얼굴이 낯설다. 엄마 노릇한지 겨우 7년차일 뿐인데, 폭삭 늙어버린 건 기분 탓일까. 그동안 가슴 쓸어내릴 일이 너무나 많았다.
11층 아파트에 잠시 환기한다고 열어놓은 창문이 화근이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기가 베란다 난간 위에 기어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기가 놀라면 더욱 큰일 날까봐 숨도 죽여가며 급히 아기를 안아올리던 그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시골집으로 이사온 것도 그 이유도 있다. 1층이라 아기가 떨어져도 다칠 위험이 없다. 아기가 혼자서 마당에 수도없이 들락날락 거려도 괜찮다.
한번은 아장 아장 걸음마 시작하던 아기 손을 잡고 같이 동네 마트에 갔는데, 진열대에서 물건을 집어드는 찰나에 아이가 혼자 걸음마 연습하다 꽈당하고 뒤로 넘어졌다. 머리 뒤통수가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는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리던지. 아기는 숨이 넘어갈듯이 울었고 초보엄마인 나는 아기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그저 아기를 안고 달랠 뿐이었다. 옆에 있던 동네 아줌마가 “아기가 토만 안하면 괜찮아요. 그것만 잘 지켜보세요. 토하면 뇌에 충격이 온 거라서 뇌진탕일 수도 있거든요.”라고 하는 말을 흘려 들으며 마트고 뭐고 급히 집에 와서 아기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잠시 있으니 이제 괜찮은 것 같아서 한숨 돌리려는 그 순간, 아기가 분수처럼 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러번. 뇌진탕 운운하던 아줌마 말이 떠올라 벌벌 떨며 급히 응급실로 갔다. CT촬영을 하고, 응급실에 머물며 의사 곁에서 아기를 지켜 보았다. 천만다행으로 아기는 다시 토를 하지 않았다. 응급실에서 한참을 지켜보며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의사가 아기가 눈 초점을 못 맞추거나, 안 놀고 늘어져 있거나, 토를 하거나 하면 다시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아이는 별다른 기색 없이 잘 자고 평상시처럼 지냈다.
한번은 아이를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세돌쯤 되던 때였는데, 아는 언니가 본인 아이를 데리고 우리 시골집에 놀러를 왔다. 나는 언니한테 잠시만 애들을 봐달라 하고, 이웃집에 뭐 갖다줄 것이 있어서 잠시 다녀왔다. 그런데 내 아이가 안 보이는 거였다. 옆집언니는 부동산 전화가 와서 그 전화에 정신이 팔려서 내 아이가 어디가는지 못봤다고 했다. 우리 애가 나를 따라갔는 줄 알았다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미친 사람처럼 아이 이름을 울부짖으며 동네를 찾아다녔다. 그 언니가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해서 신고를 했는데 말이 버벅거려서 제대로 나오지가 않았다. 시골집에 이사 온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길도 모르는 이제 겨우 세살된 아이가 어디로 간걸까. 혹시라도 산길로 간건 아니겠지. 산으로 갔다면 내가 더 빠른 걸음으로 가서 우리 아가를 찾아와야 한다! 게다가 그때 둘째 임신 5개월째였다. 순간 너무 놀라서 아랫배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당장 우리 첫째를 찾아야 했다. 정말 자식 잃은 어미는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수도 없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산이고, 동네고 울부짖으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10분이 흘렀을까. 동네 길가 한 구석에 덩그러니 세상 잃은 표정으로 작은 아기가 앉아 있었다. 내 아가였다. 어디 갔었어!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줄 알아! 하면서 괜히 아이를 안고 엉덩이를 막 때렸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혹시라도 꿈에 나올까봐 겁이 나서 일부러 떠올리지 않는 그 기억 조각들을 이 글을 쓴다고 아주 오랜만에 소환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