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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08. 2023

몸은 힘들지만 마음이 편안한 곳

프랑스는 한국과 비교하면 객관적인 지표로만 봤을때는 아이 키우기 쉽지 않다.


일단 학교 등하교는 무조건 보호자가 대동해야 한다. 한국처럼 학원차가 하원할 때 챙겨서 학원으로 실어나르고 이런 건 없다. 학원 자체가 없는데 학원차가 있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학교가 주4일제라서 부모가 수요일, 주말동안 꼬박 아이를 돌봐야한다. 학원이 아예 없기 때문에 집에서 보거나 늘이터를 가거나 아니면 운동 음악 동아리 활동 정도하며 시간을 보낸다. 식사준비는 당연히 부모 몫이다. 부모가 수요일은 번갈아 휴가를 내기도 하고 재택을 하기도 하고 아예 애를 데리고 출근하기도 한다. 조부모 도움도 받는다. 한번은 수요일에 식당을 갔는데 서빙 알바하는 아줌마 딸이 식당 한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맡아줄 사람이 어서 일하는 곳에 데리고 왔단다. 사장 딸도 아니고 알바생 딸이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것이다.


점심때도 급식 대신 집에 와서 먹고 오는 애들이 전체의 절반정도 된다. 일단 급식이 무상급식 아니고, 급식비는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부과 되는데 금액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한끼에 6천원꼴인데 우리는 애가 두명이므로 하루에 다섯살, 아홉살 애들 점심 급식비로만 자그만치 1만2천원을 쓴다. 한달로 따지면 결코 적지않은 금액이다.


그런데도 급식의 질은 한국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학교 내 급식조리시설이 없기 때문에 외부공장에서 조리된 음식물을 학교식당에 가져와서 전자렌지에 돌려준다.


메뉴도 극히 단조롭다. 무슬림 민원이 우려되어 메뉴에 아예 돼지고기는 나오지를 않는다. 우리 큰딸 말로는 고기 종류는 닭고기만 나온다 한다.


점심시간에 담임이 급식 지도하며 챙겨먹이고 하는 일도 없다. 점심시간은 선생님들 또한 자기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아직 다섯살밖에 안된 어린 둘째는 영 제대로 먹지를 못해 급식을 취소하고 점심시간마다 집에 데려와 먹이고 있다. 둘째는 8시반에 등원시키고 12시에 다시 유치원 가서 집에 데려와 밥먹이고 2시에 다시 등원시킨 후 4시반에 유치원에 다시 데리러간다. 그것도 셋째는 유모차에 싣고 왔다갔다한다. 한국부모라면 이 번거로운 고생을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나도 첨에는 엄두가 안났는데 막상 하니 또 적응이 된다.덕분에 하도 걸어다녀서 안빠지던 군살이 쏙 빠졌다.


방학은 엄청나게 길다. 한국에 비하면 수업일수가 60일 가량 적다. 거의 한국보다 3개월은 더 논다고 봐야한다. 결국 이 또한 부모 몫이다.


돌봄교실 같은 것도 있긴한데 비용이 비싸고 한국 돌봄교실과 비교하면 역시 형편없는 수준이다. 말라빠진 빵덩어리 먹으면서 교실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한국의 무료 돌봄교실과 매일 바뀌는 다양한 과일 간식, 다양한 프로그램, 상냥한 돌봄선생님 따위를 기대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랑스에서 아이 키우는 것이 훨씬 더 다고 느낀다. 몸은 분명 힘든데 마음이 편안하다.


여기는 노키즈존이 없다. 물론 모든 가게주인이 애들을 다 환하게 반기는 건 아니다. 분명 유모차 끌고 들어서면 반기지 않는 눈초리가 느껴지는 몇몇 까페나 식당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들어가서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한국처럼 "여기는 노키즈존입니다."하며 문전박대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한번은 집산다고 대출상담 받으러 남편하고 은행에 갔을때 일이다. 돌도 안된 셋째가 온 은행바닥을 기어다니는데도 아무도 뭐라고 혼내는 사람이 없었다. 애하고 눈맞추며 까꿍해 주는 직원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 담당 은행직원이 아기 장난감이 사무실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며 우리에게 사과까지 했다. 말뿐이래도 이런 배려는 처음이라 어쩔줄 몰랐지만 감격스러웠다.


결국 집을 사게 되었고 법무사 사무실에 등기를 치러 갔다. 프랑스는 절차가 복잡해서 법무사 사무실을 세번이나 방문해야 했고 갈때마다 두시간 넘게 서류작성을 했다. 그때마다 애셋을 맡길곳이 없어서 모두 데리고 갔는데 아니나다를까 돌지난 아기와 다섯살배기, 여덟살아이는 지루해서 한바탕 울고불고 싸우고 난리가 났다. 그러자 중년의 법무사 아줌마가 자주 겪는 일이라는 듯 태연하게 한쪽 장을 열더니 장난감과 애들 책을 한 보따리를 꺼냈다. 둘째 셋째는 레고 상자를 바닥에 와르르 쏟아놓고 놀기 시작했고 첫째는 그림책에 집중했다. 우리는 그 와중에  무사히 업무를 처리했다. 법무사 사무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양의 장난감과 애들 책을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법무사 아줌마는 자기 딸 어릴적 쓰던 것들인데 여기 두고 아이들이 오면 꺼내놓는다고 했다. 그제서야 아이친화적인 사회분위기라는 것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애낳은 죄인으로 벌벌 떨면서 살았다. 애를 데리고 외출하면 식당이고 까페고 노키즈존이 워낙 많아 노키즈존인지 아닌지 사전조사를 하고 방문했다. 애가 셋이나 되지만 한국에서는 여차하면 은행, 직장 같은 곳에 애를 대동하고 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해봤다. 한국에서는 아이는 업무에 방해되는 성가신 존재이니까. 어떻게든 어린이집이든, 도우미 아줌마든, 조부모집이든 떼어놓아야 한다고 으레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직접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왜 애가 여기에 있어요?애는 어린이집 같은 곳에 있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왜 애를 데리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거죠? 애엄마라면 당연히 꾹참고 집에서 애만 봐야 하는거 아니에요?"


프랑스에서 아이들 키워보니 사실 몸은 너무나 고달프다. 주4일제에 시도때도 없는 방학에, 방학기간도 엄청 길고, 외식은 무진장 비싸고 배달은 피자밖에 없고, 그래서 집밥은 진짜 옛날 할머니들처럼 계속 해야한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너무나 편안하다. 한국에서 그토록 외치는 "애엄마라면 응당 이래야지" 같은 모성신화가 없기 때문에 내가 유모차를 끌고 어디를 간들, 뭔짓을 한들 입대는 사람이 없다. 한없이 자유롭다. 애엄마가 직장을 다녀도, 담배를 피워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녀도,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나가도, 퍼져서 살집이 두둑해져도, 자가 없이 월세집 전전해도, 애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애를 낳고 키워도 엄마 자격 운운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스는 감히 다들 엄마가 되어 볼 엄두를 내고, 다들 쉽게 엄마가 된다. 어떤 사정으로 애가 생겼든간에 애는 축복이다. 애가 생기면 웬만하면 낳아 키우자 하는 곳이 프랑스다. 그래서 혼인 외 출산율이 55%다. 우리 남편도 싱글맘 슬하에서 자랐다. 한국이었으면 우리 남편 같은 경우는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


한국 사회가 여자들에게, 엄마들한테 조금만 더 관대해지기를 바래본다. 어쩌면 한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은 아주 쉬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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