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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17. 2023

페미니스트 시어머니

프랑스 오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 시어머니가 프랑스 사람이라서 저런가보다, 프랑스 문화가 저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 살아보니 프랑스 사람이 다 그런건 아니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파리지앵 페미니스트여서 그랬다.


61년생인 우리 시어머니는 13년전에 만난 지금까지 스타일이 한결같은데 한마디로 상남자 스타일이다. 머리는 염색없이 흰머리인데 몹시 짧다. 안경을 쓰고 항상 티셔츠에 운동화, 배낭, 바지, 그 위에 자켓을 걸치신다. 약간의 화장기도 없다. 한국으로 따지면 남자 대학생 같은 패션이다.


시어머니는 남편 없이 미혼모로 애를 키우셨다. 남자가 자기는 아버지 될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자 쿨하게 혼자 낳고 혼자 키우셨다.(참고로 우리 남편도 첫째애 태어났을때 자기는 아버지 될 준비 안됐다 어쨌다 했는데, 나는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며 남편 등을 호되게 후려치고 정신 차리라고 혼냈었다! 다시는 그 따위 소리 하지도 말라며.)


시어머니는 아이 성도 본인 성을 따르게 했다. 직장생활을 평생 했고 남편이 없이 애를 키워야 했으니 마침 사별한 친정엄마가 애를 키워주다시피 했다. 그래서 남편은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 집에서 컸고 엄마하고는 주말에나 봤으며 중학생 되서야 엄마랑 살기 시작했단다. 어린시절 기억이 죄다 외할머니 뿐이라 정서적으로는 자기 외할머니가 엄마 같고, 엄마랑 있으면 어색하고 큰누나 같은 느낌이 든단다.


시어머니는 살림은 아예 안하신다. 먹는데도 관심이 없으시다. 아침에 빵에 커피, 점심은 샌드위치 정도로 조금 먹는다. 샌드위치가 한국처럼 정성스럽지 않다. 마르고 딱딱한 바게뜨빵에 버터 바르고 햄 넣고 끝. 야채는 안넣는다. 저녁은 안먹거나 온야채를 갈아서 끓여서 수프라며 드신다. 한국으로 따지면 곤죽이라고 해야하나, 니맛도 내맛도 없는 수프다. 한 냄비를 혼자서 다 먹어도 허기지는 수프.


시어머니 집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다. 우리 식구가 놀러간다고 요리를 하시는 일은 전혀 없다. 냉장고를 채워놓으시긴 하는데 야채나 과일같은 신선제품은 아예 없다. 멸균우유, 버터, 치즈, 각종 요거트, 소고기패티 그런것만 들어있다. 시댁 갈때마다 단식원에 가는 것 같았다. 실제로 갈때마다 2킬로씩은 빠져서 나왔다. 급한대로 내가 시어머니집에서 요리를 하긴 했지만 프랑스는 한국처럼 장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애기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남의집 주방에서 계란후라이 하나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사랑하시는건 분명하다. 과자를 뜯어주시고 장난감 쥐어주시고 옷 사다주시고 티비 틀어주시고 하시는데 내게 낯익은 한국의 전형적인 할머니 느낌은 아니다. 할아버지 느낌에 더 가깝다. 손자들 보고 있으면서 그저 흐뭇하게 앉아있는 느낌. 참고로 시머니가 사주는 손녀들 옷에는 페미니스트 구호가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Active girl이라던지, girls can do anything, power to the girls... 막내가 누나들 옷을 물려받아 입고 다니는데 남자아이가 저런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다니니 사람들이 보고 재미있어 한다.


시어머니는 한국의 할머니처럼 간식을 해먹인다던지, 새로운 반찬을 한다던지, 빨래나 청소를 한다던지, 목욕을 시킨다던지 하면서 종종거리지 않으신다. 느긋하게 가만히 소파에서 애들 노는거 보시다가 폰으로 볼일 보시고 며느리나 아들이 차려주는 밥 드시고 계시가신다.


내눈에 어머니가 이상해 보이듯, 시어머니 눈에도 내가 이상해 보이는것 같다. 시어머니가 본인처럼 애를 하나만 낳으라 하셨는데 는 셋씩이나 낳았다. 어서 하루빨리 애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날더러 일하러 가라고 하셨는데 나는 지금 집에서 애만 보고 있다. 사실 나도 일하러 가고 싶지만, 예전에 맞벌이 감행하며 애들 포함 온가족 삶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남편이 아이 유치원 갈때까지만 집에 있어달라고 부탁을 한다. 시어머니는 내가 일하면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시겠다 하지만 평생 본인 살림도 육아도 안하셨던 분이 그 연세에 이걸 어떻게 하시겠다는건지 이해가 안간다.


아무튼 요즘 시어머니와 옛날 며느리가 만나면 이렇게 된다. 세상은 한없이 쿨내 진동하도록 진화할 것만 같지만 사람 사는게 다 매한가지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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