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리 Aug 27. 2023

프랑스 여름휴가

여름 휴가 일주일을 다녀왔다. 프랑스 사람들은 기본 5주, 최소 서너주는 가는데 우리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주일만 휴가 가기로 했다. 사실 외벌이로 5인 식구 한달휴가는 크나큰 사치다. 프랑스도 여름 휴가철에는 숙박도 식당도 따블, 따따블로 모든 것이 너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일주일도 겨우 엄두를 낸 거였다.


그것도 처음 2박은 야영장에서, 다음 2박은 친구집, 그다음 2박은 다른 친구집, 마지막 1박은 에어비엔비 아파트에서 지내기로 했다. 친구집에 애 셋을 데리고 다섯식구가 쳐들어가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민폐이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친구네 가족이 오면 자기집 방을 한칸 내주거나 방이 모자라면 거실이라도 내준다. 서로 그렇게 한다. 여기 프랑스는 서로 그렇게 민폐를 끼치며 산다.


프랑스 파리 근처에서 자동차로 9시간 거리쯤 되는 남부지방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바다 수영도 하고 모래성도 쌓고 10년 지기 남편 친구들도 여럿 만났다.


남편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일찍 결혼했던 터라 한국에서 열린 우리 결혼식에 고맙게도 거의 모든 프랑스 친구들이 와 주었다. 결혼식날 밤에 프랑스 친구들이 묵는 모텔방에서 소박하게 작은 파티를 했는데 울아버지 엄마가 치킨 두마리와 위스키를 들고 오셨다. 프랑스 친구들은 한국식으로 예의를 갖춰 고개를 돌리고 잔을 가려 마셔야 했는데 그게 그토록 신선하고 좋았다며 거듭 기억했다.


우리는 일찍 결혼한만큼 지난 10년동안 애가 셋 생겼고 나머지 친구들은 이제 막 결혼해서 아이가 하나 정도 있었다. 결혼안하고 여전히 연애하며 싱글처럼 한없이 자유롭게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며 정처없이 여행하고 일하고 파티하며 다니는 친구들도 많았다. 지난 10년간 어린 애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지쳐있던 우리는 그 자유로운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아이들은 천사같고, 안고 있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포근하지만, 그 천사는 거저 크지 않아서 내 청춘을 갉아먹고 자란다.


프랑스에서 바다는 처음 가 보았는데 바닷빛이 에메랄드빛이고 모래는 입자가 너무 고와서 한없이 부드럽고 바닷물을 만나면 쫀득했다. 모래놀이하기에는 제격이라 아이들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거제 바닷가 마을에서 10년 살다와서 바다는 원없이 가보았는데 프랑스 바다는 한국의 바다하고는 분위기가 달랐다. 프랑스 바다는 파도가 잔잔하고 바닷물이 투명하고 깨끗했다. 한국처럼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페트병이나 술병 유리조각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도 풍경처럼 여유롭게 드러 누워 있었다.


묵었던 친구집 중에 한군데는 베아리츠라는 도시에 있었다. 베아리츠는 프랑스 영토 안에 있지만 바스크말과 글을 쓰고 바스크 문화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인 셈이다. 모든 표지판은 불어와 바스크어로 표기되어 있었고 모든 음식은 고춧가루와 고추를 넣는 문화가 있어서 한국사람인 나에게는 너무 잘 맞았다. 바스크 사람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술먹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도 큰 접시에 놓고 같이 나눠먹는데 그것도 너무 한국적이라 나한테는 한국에 간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한국도 이렇게 저출산이 지속되고 인구가 계속 줄어들면 미래에 어쩌면 다른 나라 영토 안에 저렇게 소수민족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아무튼 일주일간의 휴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밀린 빨래가 산더미고 다시 밥 차리고 치우고, 애들 데리고 공원 가고 놀이터에 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저 막막했던 두달반이나 되던 아이들 여름방학이 곧 끝이 날 예정이다. 야호!

매거진의 이전글 우물안 개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