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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Sep 03. 2023

한국 역이민을 고민하며

한국의 모든 의료인을 존경합니다

어느새 프랑스에 온지 일년이 넘어간다. 프랑스에서 사계절을 꼬박 보내고나니 앞으로 프랑스 생활은 어떨지 어느정도는 예상이 된다.


프랑스남편은 한국이 얼마나 훌륭하고 좋은 나라였으며 얼마나 그리운 곳인지 나에게 귀에 지가 앉도록 얘기를 한다. 자기는 직장 때문에 당장 한국에 갈 수 없지만 나보고 먼저 애들이랑 한국 들어가 있으면 자기 직장 정리하는대로 들어가겠다 한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가족은 어떻게든 같이 살아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면 날더러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좀 해보란다. 가끔은 누가 한국인이고 누가 프랑스인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프랑스에서 끔찍히 불안해 하는 것은 병원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백신도 정기적으로 맞아야 하고 잔병치레도 있고 가끔은 놀다가 사고가 나서 머리가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진다거나 하기도 하고 갑자기 이유없이 고열에 숨쉬기 어려워하는 그런 일도 생긴다.


한국에서라면 바로 응급실을 가면 된다. 그런데 프랑스는 응급실에 가도 기본 서너시간, 다섯 여섯 시간 넘게 무작정 그 앞에서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 숨이 꼴딱 넘어가거나 피가 철철 넘치는 정도가 아니면 응급실에서 접수를 받아주지도 않는다. 고열이나 코로나 이런 증세로 응급실 가면 코웃음 치며 면박을 주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의사를 왠만해서 만나지도 못한다.


응급실 외에 개인 의원(우리나라로 치면 내과)가 있긴 있다는데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다섯군데 정도 개인 의원에 전화를 했는데 "환자를 더이상 받지 않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만 들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의사가 환자를 안받는다고 저리 당당하게 얘기할 수가 있는지 기가 막혔다. 어른은 그렇다쳐도 아이들 아플때는 제발 사정 좀 봐달라고 애원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한국 같으면 안되면 다른 병원이든 의사든 추천이라도 해줄텐데, 아니면 사정이 이래서 미안하다는 빈 말이라도 할텐데 아주 매몰차게 "우리는 환자를 더이상 받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프랑스에 개인 의원이 운영되는 방식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이 곳 의사는 그날 바로 오는 환자를 받지 않는다. 자기에게 등록된 환자들만 관리를 한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헬스장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아프면 자기가 등록된 의사(주치의)한테 전화를 걸어 진료예약을 해서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가서 진료를 받는 식이다. 그런데 그 정해주는 진료 날짜가 빠르면 2주 후, 보통은 두달후다. 그마저도 우리 가족에게는 아예 없다. 한국에서 일년전에 날아온 우리에게 지정된 주치의가 없다. 백번 양보해서 나는 외국인이라 그렇다쳐도 나머지 네 사람은 프랑스 자국민인데도 없다.


최근 남편이 귀가 아파 귀에서 진물이 철철 넘치고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우리 사는 도시에서 우리를 받아주는 개인 의원이 없기 때문에 차로 두시간 거리에 사시는 시어머니 주치의한테 사정해서 겨우 진료 예약을 했는데 예약잡은 날짜가 11월이다. 당장 출근할 몸상태가 아니라 남편은 하는수없이 기약없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스스로 자가진단하다시피 약국 가서 약을 사와서 이것저것 치료하고 있다. 남편은 한국 같았으면 아침에 병원 금방 갔다와서 정상 출근하고 정상 생활 했을 거라며 프랑스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남편은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라고 토로한다. 밤이 되면 오늘 다행히 애들 안 아프고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구나 하고 안도한단다. 처음에 프랑스 왔을 때 알게된 한국 아줌마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던게 이제야 실감이 난다. "아직 프랑스에서 애들 안 아파봤죠? 아직 병원 안 가봤으면 말을 마세요.", "이 나라는 팔 부러지면 저절로 팔 붙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요."


지나고보니 정말 그랬다. 이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설마 그렇겠어 하고 그냥 넘길텐데 당사자가 되고나면 정말 무시무시한 거다. 한국에 있을 때는 119도 응급실도 각종 의원도 의사도 간호사도 너무나 당연해서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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