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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an 02. 2024

프랑스의 혹독한 겨울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정신없이 바빴다. 이번이 프랑스에서 맞는 두번째 겨울이다. 프랑스는 11월부터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곳의 겨울은 밤낮 할 것 없이 항상 비가 온다. 한국처럼 장마비처럼 막 신나게 쏟아졌다가 해가 쨍 하고 나는게 아니다. 하루종일 추적추적 그치지 않고 축축하게 온다. 몇달째 그러하다. 해를 아예 보지를 못한다. 아주 가끔 잠깐이라도 해가 나면 해가 반가워서 놀이터로 뛰어나간다. 그러다 곧 비가 떨어지면 집으로 급히 들어온다.

이런 날씨다 보니 프랑스에서는 겨울마다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는다. 여러번 말했지만 이 나라에서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구든지 아프면 집에서 꾸역꾸역 가만히 있으면서 진통제를 먹으며 견딜 뿐이다. 학교에도 보건실이 없고, 보건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애가 열이 난다던지, 좀 아프다 싶으면, 바로 선생님에게 전화가 온다. 그러면 부모들은 애를 데리고 집에 있어야 한다. 약도 없어서 못 먹고, 본인의 기초 체력으로 자연 치유하려면 기본 일주일씩, 2, 3주일씩 걸린다. 그래서 감기 걸려서 학교에 몇주씩 안 오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돌아가면서 아팠다.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모르겠는데 40도 가까이 열이 이틀씩 났다. 아이는 힘이 없어 기진맥진해 있는데 부모로서 해줄 것이라고는 고작 시간 맞춰 해열제 먹이고, 꿀차, 생강차, 죽 따위를 끓여 먹이며, 온 몸을 찬 수건으로 닦아주는 정도였다. 한국에서라면 당장 병원에 입원해서 수액을 맞고 간호사와 의사가 계속 체크해 주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열 40도 나는건 아무 것도 아니고, 코로나라고 해도, 독감이라도 해도, 병원에서 해줄 치료는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부모 잘못 만나서 프랑스에 와서 생고생하는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재택근무하는 남편도 직장일도 제대로 못하고 휴가를 내고 집안일을 돕고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오며 같이 간호했다. 온가족 병치레 하느라 마음 졸이며 그렇게 겨울을 보냈다.

병원도 없는데 괜히 바깥 바람 쐬서 기침 나고, 열날까봐, 아플까봐 애들을 데리고 거의집에만 있었다.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그렇게 집에 온가족이 웅크리고 있었다. 병원이 없으니 방어적으로 변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애들도 하루에 한번은 바깥 바람 쐬야지 하면서 어떻게든 데리고 나갔고, 아프면 병원 가서 치료하고, 약 먹고 나으면 되지,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믿을 구석 하나도 없는 이 나라에서는 지 살 길은 지가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아프면 안된다. 다음에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의대는 못 들어갈 지언정 간호조무사 양성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간단한 의료 지식이라도 배워서 내 자식들에게 써먹어야 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난방이 엄청나게 비싸지만 남편은 그래도 아픈것 보다 낫다며 난방을 펑펑 하자고 한다. 여기서는 부모로서 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 뿐이다. 대신 통장 잔고는 줄어든다.

남편은 이 나라에서 다시는 겨울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이렇게 애들 아플까봐 마음 졸이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며, 내년 겨울 전에는 한국으로 가리라 다짐을 한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고 싶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주택 대출과 남편 직장이 발목을 잡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애 셋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안 나오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그저 하루 충실히 사는 것에 안도할 뿐이다. 애 세 마리를 재우고 밤에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도 애들 크게 안 아프고 다행히 잘 지나갔다며 안도하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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