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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an 08. 2024

양념치킨으로 새롭게 태어난 나

지난 1년반동안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이 뭐냐면 '밥'이다. 한국에서 시골에 5년 살아봤기 때문에 나름 밥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일단, 여기는 애들 학교 방학이 엄청 길다. 한국에 비하면 자그만치 두 달이 더 길다! 참, 주4일제라서 수요일도 방학이다. 방학동안은 주구장창 밥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둘째는 유치원 가는 날에도 급식을 안 먹고 집에 와서 밥을 먹는다. 급식이 영 싫다고 해서 집에 데려 와서 점심을 먹인다. 아침에 유치원 갔다가 12시에 데려와 점심 먹이고 2시에 다시 유치원 데려다 주고 4시반에 데리러 간다. 참고로 여기는 스쿨버스 그런 거 없다. 무조건 부모가 학교 교문까지 동행한다. 


남편은 항상 재택 근무를 하고, 두돌된 아기는 어린이집에 아직도 자리가 안나서 나와 한몸이 되어 붙어 다닌다. 결국 다섯명 먹을 밥을 쉬지 않고 한다.  


5명 먹을 밥을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도 갓난 애기를 봐가면서 해야 된다. 여기는 쿠팡, 마켓컬리 이런건 생각도 못하고, 동네 마트 배달도 안해준다. 유모차 끌고 장 보러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야 한다! 배추를 절여서 김치 양념을 만들어서 김치도 직접 담그고, 치킨도 닭가슴살 사서 썰고, 치킨가루를 스스로 배합하고, 양념도 직접 끓여서 양념치킨을 만들어낸다. 김밥은 기본 20줄을 싼다. 여기는 인건비가 비싸서 식당은 엄두도 잘 내지 못한다. 식당은 가격이 후덜덜하다. 하는 수 없이 조선시대 사람처럼 살고 있다.


남편도 틈날 때마다 같이 부엌일을 하니 그나마 아직 버티고 있다. 처음에는 기가 막혔는데 지금은 아무런 불만이 없다. 불평할 힘도, 시간도 사치다. 생각 자체를 안하고 산다. 생각이라는 것도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애엄마 되기 전까지는 학교 다니고, 직장에서 사무직 일을 해서인지 몸쓰는 일이 어색하고 버거웠는데, 어느덧 애엄마 경력도 10년이다. 애보고, 집안일처럼 몸쓰는 일은 여기저기 아프고, 피곤하기는 하지만, 무념무상으로 하면 되고, 사람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어서 좋다. 밤에는 눕자마자 곯아 떨어져서 단잠을 잔다. 가끔은 낮에도 틈나면 낮잠을 잔다.  


돌아서면 밥하고, 차리고, 설거지를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발전이 있다. 머리보다 손이 더 빨리 움직인다. 유튜브에 한식뷔페 동영상을 많이 봤는데 도움이 됐다. 많은 양을 어떤 식으로 요리하는지를 보고, 손놀림이나 도구 사용법 같은 것을 많이 참고한다. 그런데 자꾸 하다보니 실력이 는다. 조금씩 요령이 생긴다.


손님 치레도 직접 한다. 이제는 집에서 10명, 15명 요리도 거뜬히 해낸다. 20명 분량 요리도 해 봤다. 얼마전에는 내 생일이었는데 우리 집에 손님을 10명쯤 초대했다. 우리 식구하고 합치면 15명이다. 메뉴는 양념치킨. 치킨을 8kg를 튀겼다. 집에서 할 양이 아니라 아는 중국식당 주방장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튀겨달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안해준단다. 대신 자기 영업장 주방에서 튀겨 가는건 된다고 해서 생일날 오전 내내 세시간동안 치킨을 튀겼다. 어쩌다보니 주방장 아저씨한테 튀김 노하우를 전수 받아 왔다.


그제도, 어제도 나는 양념치킨을 튀기고, 남편은 김치를 담궜다. 지난 1년반동안 수없이 많은 메뉴를 프랑스 사람한테 선 보여 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양념치킨, 김치, 비빔밥, 잡채, 김밥순이다. 가장 손 많이 가는 음식인데 여기 사람들도 귀신처럼 안다. 그래서 치킨과 김치를 들고 친구집에 놀러가고, 우리집에도 초대하고 그랬다. 여기는 주말이면 서로 집에 초대해서 각자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고, 술을 마시고, 끝도 없는 수다를 떨며 논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뛰어다니면서 논다. 여기는 아파트가 아니라 대부분 주택에 사니까 가능하다. 우리 집도 허물어져가는 180년된 3층짜리 주택이다. 


아무튼 나는 한국에서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양념치킨을 여기서 징하게 튀긴다. 프랑스 사람들은 양념치킨에 환호한다! 이런 맛은 처음이라고 난리법석이다. 하긴 맛이 없을리가 없다. 우리 남편과 아이들이 마늘을 얼마나 까서 넣었는데... 틈날 때마다 온 가족이 마늘만 까고 있다. 김치와 양념치킨에 마늘이 어마무시하게 들어간다.


다음주 일요일에는 앞집 아저씨하고 양념치킨을 같이 튀기기로 했다. 지난번 내 생일에 왔었는데 할랄 고기가 아니라서 너무 맛있어 보였는데 못 먹어서 아쉬웠다고, 자기가 할랄 고기를 사올테니 같이 튀기잔다. 다음 주 일요일 서너시간은 또 튀김 예약이다! 프랑스에서 진짜 튀김 징하게 한다. 외국에 나오니 별의별걸 다 한다. 프랑스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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