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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an 10. 2024

씨를 말려 죽인다

한국 저출산 이유 내 맘대로 뇌피셜

한국의 저출산은 말해 뭐하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출산율이 0.7이고, 서울 출산율은 0.6이다. 나는 애를 셋 낳았는데 서울여자 6명 몫을 한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번도 애 셋 낳았다고 좋은 소리 들은 적이 없다.


두가지 부류가 있다. 첫번째는 직접적으로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 "미쳤나! 할 짓이 없어서 애만 그렇게 싸질러 낳았나!", "능력도 안되면서 왜 자꾸 애를 낳아서 직장에 피해를 주나!", "그런 식으로 애를 막 낳아서 막 키우면 요즘은 아동학대에요!", "허이구, 요즘 세상에 왜 아들 낳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어요?"(나는 아들 낳으려고 한번도 애쓴 적 없다. 자꾸 낳다보니 딸도 나오고 아들도 나온것 뿐인데...)


두번째는 엄청 고상하게 말하지만 결국 같은 소리다. "어쩌다 애를 셋씩이나 낳았어요? 인류가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는지 알아요? 나는 얼마나 똑똑하고 현명한지 이리저리 계산해서 애를 안 낳았어요. 결혼을 하더라도 딩크로 살 거에요. 여자도 경제력을 가져야 해요. 남자 하나만 믿고 살면 안돼요. 애엄마라고 너무 퍼져있지 말고, 살도 좀 빼고, 운동도 하고, 화장도 하고, 여성성을 잃지 마세요." 어쩌고 저쩌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비속어, 욕 하나 안 들어가지만 오히려 가슴에 더 심한 비수를 꽂는다.  


나는 입을 닫는다. 예전에는 속에 천불이 났다. 어떻게 저런 소리를 입밖으로 낼 수 있나 부르르 떨었는데 그것도 10년 넘게 당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다. "무슨 말을 하시든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저는 무계획으로 막 사는 인간이라 이 꼬라지로 삽니다."라고 고개를 끄덕이면, 상대도 할 말이 없는지 더 말을 보태지는 않는다.


애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애엄마고 죽을때까지 애엄마처럼 지지리 궁상인줄 안다. 하지만 나도 왕년에 나름 화려했던 사람이다. 외고도 나왔고, 대학도 괜찮은 곳 나왔고, 4개 국어를 하고(지금은 많이 까먹었지만), 유럽 회사에서 해외영업일을 했고, 남편보다 돈 더 잘 벌었던 사람이다. 우리 부부가 처음 마련한 주택에 내가 모은 돈도 크게 보탰다. 첫째 아이, 둘째 아이, 셋째 아이 태어나면서 애엄마가 다닐 직장으로 옮기고, 그것도 힘들어 결국은 집에 들어앉아 버렸지만. 가사도우미를 들이려니 한달에 450 달라고 해서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았다. 남편은 내가 집에 들어앉아 줘서 너 덕분에 온식구가 다 인간 행색을 하고 산다고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서 애엄마로 10년이 지났다. 나름 살림 육아 근육도 생기고, 막내를 두돌까지 키워놓고 보니 제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10년동안 아이들은 컸고, 시간 여유가 아주 조금씩 생긴다. 이 생은 애 셋 때문에 망했네 싶었는데, 생각보다 애들은 빨리 크고, 나는 늙었긴 늙었지만 그렇다고 호호할머니가 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직장에 면접보러 가게 되면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저는 낳을 애를 다 낳았습니다. 앞으로는 애를 더 낳을 일이 없어요. 직장일에 전념할 수 있어요. 앞으로 애들 돈 나갈 일만 남았으므로 직장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어요. 젊은 애들처럼 빠릿빠릿하지는 못하지만, 성실하게 다니겠습니다. 애들도 커서 외근, 출장도 가능합니다."


애셋엄마로 10년 지내며 맞벌이, 외벌이, 외벌이 플러스 반벌이(알바)까지 안해본 게 없지만, 몸 고생보다도 마음 고생이 더 서러웠다. 애를 안 낳았더라면 직장 동료한테, 지인들에게,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저런 수모를 당할 일이 있나. 애엄마만 되면 손가락질을 당하고, 막말을 당하고, 직장 잘리고,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지처럼 살아야 하는데, 누가 감히 애엄마가 될 수 있나.


그렇게 우리나라는 아기씨를 말렸다. 이제는 다시 출산율이 오른데도 애 낳을 여자 자체 수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아직 저출산 고령화를 직접 안 당해봐서 모른다. 프랑스는 우리보다 40년 일찍 노인 나라가 되었는데, 막상 와서 직접 보니 끔찍하다. 식당이, 마트가, 요양원이, 병원이, 쓰레기 수거업체가 일할 사람이 없어서 영업시간을 줄이고, 문을 닫는다. 아무리 이민자 인력을 갖다부어도 해결이 어렵다. 사회 전반이 무너진다고 봐야된다.


유튜브 슈카월드 코믹스에서 <20대가 사라졌다>편을 보고 괜히 생각이 많아져서 가슴에 맺힌 것 많은 애엄마가 주절주절해 보았다.


슈카는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20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기득권이 배려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아무리 가뭄이 들어 먹고살기 힘들어도 종자는 어떻게든 남겨서 싹을 튀워야 한다며 절규했다. 저출산 문제에 나만큼 진심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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