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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an 11. 2024

프랑스 이민자 되기 어렵다

세달에 걸쳐 이민자 교육을 받았다.


불어 시험만 두번을 치렀고, 운좋게 시험결과가 잘 나왔다. B1나왔는데 별도로 불어 수업을 안 들어도 되고, 프랑스 국적 취득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시험 결과가 신통찮으면 나라에서 운영하는 어학당에 가서 프랑스어 수업을 들어야 한다. 아는 외국인 친구는 100시간씩 불어수업 들어야 한다고 통보 받았는데 죽을 맛이었단다. 홀홀단신으로 와서 애 봐줄 사람도 없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 같은 외국인은 어쩌라는 건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라에서 하라는대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비자를 못 받는다. 하라는대로 안하고 어영부영 하다보면 불법체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월세집도 못 구하고, 안그래도 가기 힘든 병원은 더더욱 못 가고, 직장도 못 구하고, 뭐 추방 당할 수도 있고(인권 보호 차원에서 실제 추방은 어렵다고는 하는데). 한국에서 살 때는 불법체류자가 무시무시하게 들렸는데, 여기서 막상 살아보니 정신없이 살다가 서류 하나 날짜 넘기면 불법체류자가 된다는 걸 알았다.


언어 부분이 해결되고 나면 다음으로 프랑스 생활 적응 교육을 받는다. 하루에 8시간씩, 총 4번 수업을 들으러 갔다. 실제적인 의료, 주거, 자녀 양육, 취업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도 잘 모를 것 같은 고대부터 시작된 프랑스 역사, 문화, 종교, 정치사 수업을 받는다. 시험도 치는데 객관식이어서 한국에서 다년간 입시로 훈련된 찍기 실력이 녹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한마디로 교육의 목적은 기-승-전-취업이었다. 첫째날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강사는 물었다. "이름-출신국-너희 나라에서 무슨 일 했는지, 앞으로 프랑스에서 무슨 일 할 예정인지 말하세요." 스무명 남짓되는 이민자 학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대답했다.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왔다. 알제리, 기니, 나이지리아, 탄자니아,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아프리카 나라들, 모로코,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파키스탄, 터키, 조지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멕시코, 마지막으로 유일한 아시아 사람이자 한국인인 내가 있었다.


희망 취업 분야로는 다들 주로 식당, 호텔, 청소, 간병, 건축, 수리, 쓰레기 처리, 동물원, 마트 등을 들었다. 단순노동일이다. 어느 나라든 외국인들에게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더럽고, 돈 안 되는 일을 너희가 대신 해 달라는 거다. 한국도 이민청을 신설해서 외국인 노동력 데려온다 어쩌고 하는데 별반 다르지 않을테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저는 아직 애들이 어려서 당장은 취업을 보류중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프랑스 적응하면서 천천히 알아보려 합니다."라는 한국의 중년 정치인 같은 대답을 했다.


이력서 쓰는 법을 배우고, 면접 태도를 익혔다. 나이 서른일곱에 이걸 배우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나보다도 나이가 어린 강사는 꽤나 진지했다. 면접 전에 10분 전에 도착할 것, 복장은 이렇게 정장을 입고, 부정적인 단어는 사용하면 안되고, 미소를 띄고 예의를 갖춰서 이렇게 면접에 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지막 날에 이민자 교육 수료증을 받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애들을 여기저기 맡기고, 남편도 조퇴를 내고, 연가를 내고, 어쩌고 저쩌고 해 가면서, 겨우 지난 세달간의 이민자 교육을 마쳤다. 이제 나는 합법적으로 2년간 이 나라에 있을 수 있다! 그런데 2년 후에 이 짓을 또 해야 한다. 이노무 프랑스가 콧대가 얼마나 쎈지, 합법적인 이민자로 받아들여지기가 정말 녹록치 않았다.


* 참고로 작년부터 프랑스 이민법이 많이 엄격해졌다. 불어와 시민 교육이 필수다. 최근 프랑스는 이민자와 본국민 사이에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폭동과 약탈, 방화, 테러가 나라 전체에 퍼졌다. 그때는 외출도 삼가고 무슨 일 당할까 싶어 그야말로 집에만 웅크리고 있었다. 서로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너무 다르고, 차별과 분노가 쌓인 결과다. 당장 싸게 부릴 수 있는 인력이라고 다문화다, 이민이다, 쉽게 들여오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른다. 특히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를 사람은 후세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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