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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an 15. 2024

날더러 성을 바꾸라고?

프랑스에 온지 어언 일년반인데 매일매일이 문화 충격이다. 아직도 더 놀랄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프랑스에 와서 여전히 충격적인 것은 결혼 문화다. 지독한 남녀 불평등에, 나로서는 이해 안되는 것 투성이다. 프랑스가 이런 줄 알았으면 프랑스 남자하고 결혼 안 했다!


일단 호칭부터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결혼하면 보통은 여보, 당신, 마누라, 와이프, 자기, 오빠, 애기아빠 등등으로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남편을 Mon mari(몽마리, 나와 결혼한 분)이라고 부르고, 남편은 부인을 Ma femme(마팜, 내 여자)라고 부른다. 이승기가 부르는 '누나는 내 여자니까'하는 노래도 있으니까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는데 요즘은 꺼림칙하게 들린다. 그야말로 부인은 남편 소유의 여자가 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결혼하면 여자는 남편 따라 성을 갈아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이주리'였는데, 결혼하고 남편이 강씨면 '강주리'가 된다는 말이다. 남편이 강포동이라고 하면 나는 결혼과 동시에 강주리로 변하고, 애들도 강이쁨, 강귀염, 강멋짐 이런 식으로 아빠성을 물려 받는다. 죄다 강씨 집안이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 성을 가는게 보통 일인가? 한국에서는 "그게 진짜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내가 성을 간다!"고 말할 정도의 일이다. 내 모든 걸 건다는 뜻으로 성을 간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성은 쉽게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람들은 개명을 할지라도 성은 왠만하면 그냥 둔다. 이혼을 해서 아빠하고 같이 안 살더라도 성은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진실법'이라고 해서, 이혼 후에 아빠 성을 엄마 성으로 바꿀 수 있는 법이 생기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많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성은 평생 가지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결혼했어도 성을 안 바꿨다. 나는 프랑스 남자하고 결혼했어도 한국에서 결혼해서 한국에서만 살았다. 물론, 프랑스대사관 가서 혼인 신고도 했지만, 한국에서만 쭉 살았다. 그래서 내 이름 이주리 그대로 결혼전과 마찬가지로 유지해 왔고, 별탈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내 성이 프랑스에 오고부터 문제가 많다. 하지만 37년을 잘 써온 내 성을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알아온 사람들이 나를 이주리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불라불라불라주리가 되는게 싫었다. 게다가, 남편 성이 프랑스 말이라서 발음도 어렵고, 길고, 예쁘지도 않아서 그게 내 이름에 들어가는 것도 꺼림칙했다. 그래서 이주리로 살겠다고 했고, 남편도 그래라 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결혼하면 여자는 남자 따라 100% 성을 바꿔야 한단다. 바꾸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자동으로 바뀌어져 있다! 우리가 집을 살 때 공동 서명한 등기부등본이 그러하고, 의료보험증이 그러하다. 내 여권을 보여주며 한국에서 공식 이름이 이주리인데, 왜 프랑스 등기부등본과 의료보험증에는 남편의 해괴망측한 성과 주리가 붙어있느냐고 담당자에게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부부는 시스템에 따라 자동으로 같은 성으로 서류가 나온단다. 


시스템이 하나도 없는 나라에서 갑자기 자동으로 그렇게 된다고 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프랑스 오고부터는 여기서는 이주리, 저기서는 블라블라주리, 또 어디서든 블라블라이주,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불린다. 처음에는 머리가 아프고 복잡했는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내려놓고 되는대로 산다. 뭐라고 부르면 어떠하리. 그게 중요하냐.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저번에도 말했지만 프랑스는 기본이 3혼이다. 그래서 이주리였다가, 첫남편 따라 블라주리되었다가, 둘째 남편 따라 콜라주리 되었다가, 셋째 남편 따라 얄라주리 되는거다. 그런데 프랑스는 서류의 나라이기 때문에 각종 은행, 증명서 등등 성을 다 바꾸려면 2년은 족히 걸린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결혼을 안하는 거였다. 어차피 이혼할텐데 성을 요래 바꾸고, 저래 바꾸고 하려면 그 번거로움을 어쩌려고? 나 같아도 결혼 안하고 동거를 택하겠다. 


여기와서 보니 나는 프랑스가 뭔지 하나도 모르고 프랑스 남자하고 결혼을 한 거였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다행히 스파르타 한국생활과 부인 잔소리와 등쌀 덕택에 10년만에 우리 프랑스 남편은 한국남자로 새로 거듭 났지만. 그래도 프랑스 물 들기 전에 어서 한국으로 가야지! 매일 코리안 드림을 꿈꾼다. Dreams come true,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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