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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an 16. 2024

화장실 인심

"이노무 프랑스를 빨리 떠나야지, 진짜."

궁시렁궁시렁 투덜거리며 남편과 아이가 집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 유치원에 둘째를 데리러 갔다 돌아오던 참이었다.


"왜, 또, 무슨 일인데?"

"젠장, 애를 또 노상방뇨시켰다니깐."

"왜? 유치원에 다시 들어가서 쉬하고 오면 되잖아?"

"둘째가 유치원 나오자마자 '쉬하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선생님한테 '잠깐 화장실 좀 갔다 갈게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안된대. 점심시간이고, 자기 휴식시간이라서 안된대. 그러면서 교문을 쾅 닫아 잠가 버리더라고."

"인정머리 되게 없네. 근데 저번에도 그렇더라. 그래도 애 쉬하는건 좀 봐주지. 남도 아니고. 암튼 자기 시간 5분을 손해 안본다니깐. "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급하게 앞에 도서관에 뛰어갔어. 근데 그 도서관도 점심시간이라서 문을 닫으려던 참이야. 그래도 내가 애가 쉬가 급해서 잠시만 화장실 쓰자고 사정하는데, 그래도 절대 안된다면서 문 잠그고 가더라."

"허이고, 여유 넘치고, 지 담배 피우고, 커피 먹고 하는 지랄은 다 하면서, 애 쉬하는거 잠깐을 못봐주네..."

"애는 더이상 쉬 못 참는다고 울고불고 난리라서 그 앞에 나무 밑에서 노상방뇨 시켰지. 근데 옆에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개 끌고 나와서 개도 그 옆에서 쉬를 하는거야. 진짜 이 나라는 개판이야. 한국에서는 아무 가게나, 다이소나 뭐나 들어가서 화장실 좀 쓰게 해달라고 하면 다들 쓰라고 하는데..."


프랑스 화장실 문제는 심각해도 너무 심각하다. 


일단, 화장실 수가 너무 부족하다. 한국 같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화장실이 없다. 공원에도, 지하철역에도, 기차역에도, 버스터미날에도, 가게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외출해서도 갑자기 용변을 보고 싶게 마련인데, 화장실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혹시나 용케 공중화장실이 있더라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많다. 한국처럼 하얀 사기로 된 변기도 아니고, 주로 쇠로 되어 있는데, 변기 앉는 부분이 없다. 도저히 앉아서 쉬를 할 방도가 없다. 남자들이야 서서 할 수 있으니 다행인데, 여자들은 엉덩이를 들고 스쿼트 자세로 쉬를 해야 한다. 어른인 나도 힘든데, 애들은 이 자세로 어떻게 쉬를 하나. 결국에는 애들은 나무 뒤에 노상방뇨하러 가야 한다.    


위생상태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지난 1년반동안 단 한번도 공중화장실 청소하는 꼴을 못 봤다.  휴지는 당연히 없고, 불도 잘 안 켜지고, 수돗물도 안 나오고, 타일도 깨져 있고, 담배꽁초와 쓰레기도 굴러 다니고, 뭔가 범죄의 소굴처럼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애들은 무서워서 공중화장실에 가기 싫어한다.


한번은 애 옷 사러 아동복 가게에 간 적이 있다. 사이즈 때문에 애한테 입혀보고 살려고 애를 데리고 갔는데 애가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똥이 나온다고, 급하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나는 점원에게 화장실 잠시만 쓰게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그래도 그 점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건 니 사정이지, 내 알 바 아니다는 거만한 표정으로 안된다고 말했다. 손님용 화장실은 없고, 직원용 화장실은 절대 쓸 수 없다고, AI보다 더 AI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애가 셋이라서 그 가게에 옷을 자주 사러 갔는데, 그 이후로는 정 떨어져서 발길을 끊었다.


또, 한번은 파리에 가서 남편하고 애하고 전철을 탄 적이 있다. 한시간 반 넘게 이동하다 보니 나도 쉬가 마려워서 "환승역에서 화장실 좀 갔다올게" 그랬더니 남편이 막 화를 내는 거였다. 왜 집에서 화장실 안 가고 여기 와서 화장실을 가냐고, 여기는 화장실도 없는데, 어쩌구저쩌구. 나는 이해가 안됐다. 전철 환승역에 화장실이 없는 것도 말이 안됐고, 아무리 없다해도 직원용 화장실이라도 있겠지, 아니면 역 앞에 상가가 있을테니 카페든, 가게든지 어디든 가서 부탁하고 화장실 잠시 쓰면 되지,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전철 환승역에 화장실이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직원(프랑스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으므로)을 겨우 찾아서 직원용 화장실이라도 쓰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어떤 놈이 화장실에 변기 뚜껑을 다 떼어가고, 거울 유리를 박살내서, 지금 사용금지라고 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냐고 했더니, 그건 나도 모르지, 하고 쌩 가 버렸다. 밖에 나가보니 가게도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서 저기 보이지도 않는 카페를 찾아 10분을 걸었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화장실 가서 쉬 한번 하고 오는데 30분이 넘게 걸린거다! 전철역에서 애 셋과 씨름을 하고 있던 우리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깊은 한숨을 쉬었다.


프랑스 지하철 역에는 화장실이 없고, 지하철 역마다 백년 넘은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오늘도 어쩔 수없이 그곳에서 엉덩이를 까고 쉬를 하는 어른이 있다. 물론, 청소하는 사람은 없다.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못본 척 지나간다. 같이 걷는 열한살짜리 우리 큰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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