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인종차별
프랑스 오기 전에 인종차별이 뭔지 모르고 왔다. 예전에 중국 상해에서 유럽계 회사에서 일할 때, 유럽에 자주 출장을 오곤 했지만, 딱히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직업이 직업인만큼 국제적인 경험이 풍부했고, 나름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건간에 앞에서는 교양 떨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프랑스에 아예 살러 오면서부터는 날 것 그대로의 프랑스 사람들을 만난다. 일회성으로 만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일년 넘게 이웃으로, 친구로, 친척으로 만나는 일상적인 관계다. 이들은 여태 만나왔던 최소 대학 졸업은 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말끔한 백인들이 아니다.
다들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얼굴 색깔이 다양하다. 백인도 있고, 흑인, 아랍사람, 남미인, 아시아인도 있다. 전세계가 다 모여있는 셈이다. 말이 좋아 프랑스 사람이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종교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교육수준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다. 온몸에 문신을 했고, 담배를 물고 살고(때로는 마약을), 술집에 죽치고 앉아 복권을 긁으며, 직장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최저임금을 받고, 실업급여를 받고, 기초수급자로 지내기도 한다. 개와 고양이를 많이 키우기도 한다. 이슬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안 먹고, 할랄고기만 먹는다. 이슬람 여자들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온몸을 다 덮는 검정옷을 입고 다니며, 아이를 많이 낳는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출신들은 가족 단위로 아시아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출신은 가뭄에 콩 날만큼 거의 없다. 내가 사는 이 곳에는 아시아 사람은 모두 30명 가까이 되는데 모두 중국인이며,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이 곳에서 나는 동양여자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한국을 외쳐봤자 의미없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들어본 적도 없고, 들어봤어도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나라이다. 김정은이 핵을 쏜다는 시끄러운 북한 그 언저리에 사는 나라이다. 아무리 K-pop과 K드라마가 인기라도 해도, 그건 10대 후반 아주 소수의 매니아층이 열광할 뿐이다. 한국에 열광하는 일부 프랑스 10대들은 모두 고등학교에 있고(여기는 고등학생이 기숙사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으며(프랑스 아이들은 한국처럼 엄카(엄마카드)도 없고, 용돈도 넉넉히 받지 않고, 최신 휴대폰도 없다. 그래서 주말에 알바하는 아이들도 많다), 사회에서 나하고 만날 일도 딱히 없다.
그나마 여기서 알게된 중국 여자들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말을 걸고 친해져 보려 했다. 나는 중국 상하이에서 5년을 살았고, 직장 생활을 해서, 중국말도 불편없이 잘하고, 중국인들하고도 스스럼없이 지내지만, 프랑스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만났던 그 중국인들이 아니었다. 중국을 떠난지 너무 오래 되서 오히려 나보다 중국말을 못하는 경우도 많고, 프랑스에서 처해있는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할 이야기도 마땅히 없다. 여기서 만난 대부분 중국여자들은 나이 많은 백인 프랑스 남자와 동거(결혼이 드물다)했다. 나이차이는 20살 넘게 나고, 남자는 전처와 자식을 이미 여러명 두고 있고, 중국여자하고는 두번째, 세번째 동거다. 중국여자들은 식당, 술집, 네일샵, 피부마사지 일을 한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내 얼굴이 그 중국여자들하고 똑같이 보인다. 그래서 어쩌다 말을 섞게 되면 "너 중국 식당에서 일하는 걔 맞지?", "너 누구누구랑 동거하는 그 중국여자 맞지?"하면서 아는 체를 한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 눈에는 똑같이 보인다.
심지어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까지도 "니하오! 니하오!"하면서 나한테 달려든다. 처음에는 악의가 없는 것 같아 신경 안쓰고 걸어갔는데, 매번 길을 걸을 때마다 쫓아오며 끝까지 "니하오"를 외치니 덜컥 겁이 났다. 덩치는 나보다 두세배는 큰 남자가 그러니 무섭기도 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면서 애들 데리고 걸어가는데도 그러니 진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여기는 경찰이 그런 걸로는 일을 안 한단다. 한번 남편이 "다시는 아는 척 하지 말라!"고 소리 고래고래 치며 으름장 놓은 후에야 아는 척을 안 한다.
처음에는 화도 많이 나고, 서러웠는데, 이제는 체념했다. 하지만 절반은 동양사람인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사회에서 별반 다르지 않을테다. 게다가, 여기는 선생님들도 일을 열심히 안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든, 왕따든, 별로 개입을 안한다. 우리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그게 부모로서 안쓰럽고 미안하다.
살면서 이렇게 작아지고 초라해본 적이 없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점점 집밖을 안 나가게 된다. 나는 원래는 많이 웃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프랑스 온지 얼마 안됐을 때는 동양 여자가 어떻게 비춰지는 줄 모르고 한국에서처럼 할 얘기 다 하고 깔깔 웃고 그랬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 반응이 "우와, 이 동양여자가 말을 할 줄 안다! 생각이 있다! 성격이 있다!"하면서 놀라고, 불쾌해하고, 당혹스러워했다.
한번은 내 생일 때 프랑스 친구들을 불러다가 양념치킨을 해 먹이며 한쪽 벽면에 배경으로 한국 드라마를 틀어놓았는데, "저건 드라마라서 저렇게 현대적이고, 깨끗하고, 멋져 보이는거야. 아시아가 실제로 저렇게 멋질 리가 없어." 하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곳 프랑스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예전에 자신들이 지배했던 식민지 나라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그게 다다. 대나무로 만든 꼬깔모자를 쓰고, 평화로운 농촌에서 손수 농사를 짓고, 쌀과 야채, 새우 따위를 먹고 살며, 글은 쓸 줄도 모르고, 한없이 순박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나는 프랑스에서 내 정체성을 고민한다. 스스로 한국의 민간 외교관이라고 자처하며 열심히 해다먹이고, 친절한 이웃이 되려 노력했지만, 프랑스인들의 오만함 앞에 무릎을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