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태어나고부터는 싸울 일이 천지였고 부부는 사사건건 싸웠어요. 일단, 부인이 아기를 안고 업고 끼고 키우는 것을 남편은 싫어했고요. 프랑스에서는 애착인형 같은거 끌어안고 자기 방에서 혼자서 자기 침대에서 자야 되는데, 부인이 자꾸 애를 품에 끼고 젖 물려 재워서 남편은 짜증났어요. 애 장난감은 애 방에만 있어야 되고 그 외의 장소(거실이나 주방 등)에는 있으면 안되는데 집안 여기저기 장난감이 있어서 남편은 짜증이 났고요. 애는 자기 방에서 혼자서 놀아야 되는데 맨날 엄마아빠한테 와서 놀아달라하니 남편은 짜증났고요. 차 타면 재미 대가리 없는 동요만 들어야 하니 남편은 본인이 좋아하는 메탈음악을 못 들어서 화났고요. 식당에 가면 아기가 얌전히 앉아서 밥먹으면 좋겠는데 자꾸 돌아다니려 하고 식탁에 있는 접시를 땅에 던지고 해서 남편은 밥을 밥답게 못먹어 화났고요. 남편이 친구들하고 술자리가거나 해외에 여행 간다하면 부인이 이해를 못해주고 인상써서 남편은 화나고요. 주말에 남편이 취미생활하러 친구들하고 낚시를 다니는데 부인이 또 인상써서 남편은 짜증나고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집도 깔끔하게 치워져 있어서 좀 쉬면 좋겠는데 집은 항상 어수선하고, 하루종일 일해서 피곤한데 TV하고 폰 잠시 하면서 잠깐 소파에 누워있으려 하는데 집안일 좀 하라고, 애 좀 보라고 잔소리하는 부인 때문에 남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거실 한복판에 알록달록한 미끄럼틀이 있는 거에요. 남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이 집은 애를 위해서 존재하는 집이냐? 미끄럼틀은 놀이터에서 타면 되지, 왜 이게 집안에 필요하냐고! 당장 미끄럼틀 없애라!" 부인은 부인대로 할 말이 있어요. "당신은 이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잖아! 나는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애도 본다고.. 니가 한번이라도 애 데리고 놀이터 가서 미끄럼틀 태워준 적 있어? 있냐고? ... 애가 이 미끄럼틀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아? 이 미끄럼틀에서 하루종일 놀아. 잠시라도 나한테 떨어져 있게 해주는 고마운 미끄럼틀이라고. 그 잠시를 틈타서 내가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돌려. 이 미끄럼틀 돈주고 산것도 아니고 친한 언니가 그냥 준거야." "야! 난 한국남자에 비하면 진짜 많이 도와주는거다. 암튼 난 절대 미끄럼틀 집에 있는 거 못 보겠으니깐 당장 치워!" "야!! 여기가 니 집이기만 하냐? 나랑 애도 같이 살아. 미끄럼틀 사주지는 못할망정 고작 미끄럼틀 하나도 내 맘대로 못 놓냐!"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그날 밤 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가방 하나 챙겨 집을 나갑니다. "그래! 미끄럼틀 없애고 니 하고 싶은대로 해놓고 너 혼자 잘먹고 잘살아라!"라는 말을 남긴 채.
부인이 친한 언니한테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얘기하니 그 언니는 자기 집에서 며칠 지내도 된다 합니다. 그 집에 어수선한 장난감방에서 아기와 함께 지냅니다. 야속한 남편은 아무런 연락이 없어요. 저녁시간이 되어 언니와 형부, 그 집 아이들 둘은 오붓하게 식탁에 앉았고, 부인과 아기는 어색하게 엉거주춤 앉아 있습니다. 부인은 "저희 남편이 얼마나 못돼쳐 먹었는지, 글쎄, 아기 미끄럼틀도 집에 못놓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며 형부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묵묵히 듣고있던 형부의 한마디. "먹고 살만 하니까 쓸데없는 걸로 싸우는 거에요."
집나와 남의 집 장난감방에 구겨져 지낸지 4일째 되는 날, 갑자기 애가 열이 펄펄 납니다. 애는 힘이 없어 축 늘어지고... 머릿속이 새하얘집니다. 잠시의 주저없이 바로 남편에게 전화합니다. "여보! 애가 많이 아파! 열이 너무 많이 나!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해! 차 갖고 ㅇㅇ로 와!"라고 하니 남편도 "알겠어! 지금 당장 갈게!"라며 부리나케 달려옵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절대 같이 못살겠다며, 심지어 부인은 집을 나오기까지 했는데, 애가 아프다는 말 한 마디에 모든 걸 잊고 어느새 같이 응급실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링겔 맞고, 해열제 맞고 하더니 열이 떨어졌고, 부부는 놀란 가슴을 쓰러내리며 집으로 갑니다. 부인과 남편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에 가서 평소처럼 잠이 듭니다. 애 땜에 싸우더니 또 애 땜에 화해하고 그렇게 부모가 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