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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May 20. 2022

이토록 까다로운 돼지고기 요리

물에 빠진 돼지고기를 못 먹어서요

온 가족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7일간 오붓하게 집콕을 다녀온 후, Corona is free!와 함께 아주 오랜만에 외식을 계획했다. 딸아이는 국수나 우동이나 짜장면이 먹고 싶단다. 남편은 동네 호프집에서 치맥을 먹고 싶단다. 짜장면도 치맥도 배달음식으로 질리게 먹었던 (물론 그들과 함께였다. 아, 안온하다 못해 지루한 그들의 입맛이란.) 나는 정중히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고 외쳤다. 이 동네로 이사온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한 번도 나선 적 없었던 우리 아파트 앞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너무 오랜만에 외식을 하게 된 것에 한 번 놀라고, 나름 동네 맛집이긴 했지만 코로나 이전과 별 차이 없이 바글바글한 인파에 또 한 번 놀라고, 직원이 직접 구워준 지글지글한 삼겹살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세상에 이렇게 맛있다니! 감탄하며 또 한 번 놀랐다. 


"기왕 외식을 나왔으니 이렇게 집에서 해먹기 힘든 걸 먹어야 하지 않겠어?"

딸아이와 남편에게 의기양양 소리치며 입 안이 미어 터지도록 삼겹살과 겉절이를 밀어 넣는다. 너무 많이 밀어 넣어 도저히 넘기기가 어려우면 맥주를 한 잔 들이킨다. 딸아이의 볼과 입술이 기름기에 반들반들하고 남편은 고깃불 때문에 몹시 더운 눈치지만, 두 사람도 짜장면과 치맥은 잊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듯하다.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춥다기보단 조금 시원한 봄밤이다. 아이의 밥시중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아주 오랜만에 끼니 걱정 없이 끼니를 때워 시원하다 못해 후련하다. 더구나 우리 세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을 배터지게 먹었다. 더욱 만족스럽다. 


나도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더 반가운 쪽은 역시 소고기다. 딸아이가 유아식을 시작하고 나서 소불고기를 해 주었을 때 그녀가 보인 미적지근한 반응에 내심 놀랐다. 반면 마찬가지로 내가 해 준 간장 제육볶음은 신이 나서 열심히 오물거렸다.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왜 소불고기보다 제육볶음을 더 좋아하지? 난 돼지고기 특유의 강한 고기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울 때도 가끔 강한 고기 냄새를 풍기면 반가움보다 역겨움이 먼저 밀려올 정도다.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는 딸아이의 입맛은 아무래도 주는 대로 깨끗이 밥반찬을 비우는 남편의 입맛을 닮은 것 같다. 시아버지가 소불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니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소불고기보다 제육볶음을 좋아하는 우리  입맛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는 오히려 갸우뚱한 표정이다. 본인은 소고기의 비린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제육볶음이나 돼지불고기를 더 자주 만들어 준단다. 돼지고기에 대한 목격담을 하나 둘 쌓으며 오늘은 돼지고기 요리를 해 볼까 하지만 입맛이라는 본능을 거스르기란 역시나 쉽지 않다.


난 물에 빠진 돼지고기 요리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 무던한 남편이 환장하고 좋아라 하는 김치찜도 입에 거의 대지 못한다. 부대찌개나 짬뽕의 고기도 웬만하면 걷어내고 먹을 정도다. 가끔 친정엄마가 요리 실력을 발휘해 (아마 남편을 위해) 김치찜이니 애호박돼지찌개니 한솥을 보내 주면 아무리 좋아하는 남편도 혼자 먹기엔 양이 많을 테니 조금은 울며 겨자먹기로 함께 즐기는 정도다. 그렇다고 매일 소고기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방장 마음대로라곤 하지만 고객님을 굶길 수도 없다. 내 입맛에도 괜찮은 돼지고기 요리를 찾으니 자연히 요리의 폭이 좁아진다.




떡갈비:

유튜브 채널 <마카롱여사>의 레시피와 비슷하다. 친구에게서 떡갈비 레시피 얘기를 듣기만 하다가 우연히 이 채널을 접한 후 처음으로 따라해 보았다. 파를 잘게 썰고 양파와 마늘은 믹서기에 갈아 프라이팬에 볶는다. 한 김 식힌 후 쇠고기 다짐육과 돼지고기 다짐육을 1:1~3:7정도의 비율로 섞는다. 이때 소불고기 양념을 1~2스푼 정도 함께 넣는다. 간장, 설탕, 소금, 참기름 등의 비율로 직접 떡갈비 양념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워킹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정도로 친절하지 않다(고 핑계를 댄다). 섞은 고기 덩이를 주먹 크기 정도로 가르고 바로 프라이팬에 중불로 구워 낸다. 이때 프라이팬 뚜껑을 덮어 속까지 잘 익힌다.


등갈비:

친정어머니의 등갈비찜을 혀로만 기억했다가 손맛으로 구현하는데 실패하고, 이런 저런 핀잔 섞인 조언을 들어가며 얻은 레시피를 내 마음대로 조작해 간단하게 만든다. 끓인 물에 등갈비를 5분 정도 삶아낸 후 찬물에 헹궈 낸다. 이때 뼈 근처의 시커먼 덩어리들을 손으로 박박 닦아 낸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소불고기 양념(매운 걸 먹지 못하는 딸아이에겐 이 소불고기 양념이 거의 백종원 만능 소스 수준이다.)을 2~3스푼, 양파, 파, 통마늘을 함께 넣어 물을 자작하게 붓는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중불에 40분 이상 오래 삶아낸다. 그러면 부드러워진 등갈비의 뼈가 쏙쏙 잘 빠진다. 딸아이는 갈비짝을 직접 뜯어 먹는 걸 무척 좋아한다.


돈마호크(자매품_통삼겹구이):

나보다 친정 엄마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은(왼손잡이, 살림고수) 친구가 카톡으로 그녀의 네 살 배기 아들 사진을 보내 주었는데, 제 머리통보다 더 큰 돈마호크를 들고 있는 식사 시간의 모습이었다. 내가 따라할 수 없는 길이라며 사진만 보고 흐뭇해 하다 우연히 마트에서 돈마호크를 만났다. 긴가민가하며 저녁상에 차렸는데, 오히려 딸아이보다 남편이 그렇게 좋아한다. 돈마호크는 그렇게 비싸거나 맛이 뛰어난 부위가 아니지만 그 특유의 생김새와 부족한 수량 덕분에 희소성이 넘친다. 마트에 가끔 들어오면 반드시 사서 온다.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올리브오일을 치덕치덕 바른다. 바질과 소금을 대충 뿌린다. 종이호일을 깐 에어프라이어에 200도X20분X(뒤집어서) 20분 구워 낸다. 냉장고에 처치곤란한 새송이버섯, 단호박, 감자, 당근 따위가 있다면 함께 댕겅댕겅 썰어 던져 넣는다. 상추와 쌈장과 함께 낸다. 

 

순두부찌개: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찌개 중 하나. 나도 순두부찌개를 싫어하진 않으나 남편의 것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것이요, 나의 것은 해물이 듬뿍 들어간 것이다. 절충한답시고 둘 다 넣어 만들어도 보았으나 둘 다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 <마카롱 여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잘게 썬 파와 마늘과 다진 돼지고기에 소금 한 꼬집을 뿌려 달달 볶은 후 물을 부어 끓인다. 애호박, 양파, 순두부를 넣고 간장 한 스푼 두른 후 마지막에 계란을 넣고 한 번 더 팔팔 끓인다. 딸아이 것만 먼저 덜어낸 후 마파두부 양념 소스나 고추기름을 붓는다. 한 김 식혀 두었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물을 조금 더 붓고 끓인 후 계란을 하나 더 깬다.




물에 빠진 고기 특유의 물컹하고 묵직한 느낌이 싫어 다짐육을 자주 사는 게 좀 찔린다. 남편은 뭘 해다 먹여도 데면데면하다. 오로지 딸래미가 찹찹 오물거리는 그 낙으로 오늘도 주방 구석에서 뭘 뚜그당거려야 하나 궁리한다. 냉동실 구석에서 한 달 가까이 구르고 있는 돈까스 생각도 나고, 지난 주에 드디어 제육볶음 한 번 해 보겠다고 큰 맘(?) 먹고 산 냉동 돼지뒷다리 한 근 생각도 난다. 같이 먹으려고 산 로메인 상추가 더 무르기 전에 오늘은 기필코 제육볶음을 해 보아야겠다. 친정엄마가 전수해 준 백종원 선생님의 비법(고기 볶고, 양념 볶고, 야채 볶기)과 어남선 선생님의 비법(5:3:1이렸다?)을 풀어 볼까. 뚜그당뚜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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