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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Apr 29. 2022

가족을 위한 닭고기 요리

대충 만들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가족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강제 집콕살이를 한 지 3일이 지났다. 토요일에 양성을 받아 이미 5일차가 된 딸아이는 이삼일 고열로 고생하다가 드디어 기세가 한풀 꺾였다. 고열이라고 해도 39도를 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튿날 pcr 검사에서 양성을 받은 남편은 약간의 근육통과 인후통이 있고 가래가 꽤 심하다. 5일 반차를 내고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하더니 반차는 반려되고 재택근무 중이다. 3일 후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을 받아 3일째가 된 내가 제일 심하게 앓고 있다. 독감에 걸린 적은 없으나 아마 독감보다 심한 근육통과 인후통에 시달리고 있다. 배달음식과 냉파(냉장고 파먹기)로 겨우겨우 삼시세끼를 연명하다가 오늘 아침은 씨리얼, 점심은 즉석 짜장면으로 때우니 아이와 남편이 괜히 안쓰럽다. 냉동실에 있는 고기라곤 소분해둔 돈까스 다섯 덩어리와 닭정육 600g 뿐이다.


오늘 저녁은 닭으로 정했다. 즐겨 보는 <마카롱여사> 유튜브 채널의 버터치킨커리의 중간 과정까지만 복기한다. 카레까지 갈 것 없이 버터치킨에 볶은 양파를 곁들어야겠다. 꽝꽝 얼은 닭정육 600g을 냉장실로 옮겨 반나절 동안 해동시킨다. 해동된 닭정육 덩어리를 찬물에 바락바락 씻으며 뭉친 핏물이나 누런 기름때 같은 걸 벗겨낸다. 스텐볼에 담은 후 친정엄마가 만들어 보내주신 생강술을 꺼내 붓는다. 닭 냄새 제거에도 탁월하고, 요리가 완성되고 나면 생강 특유의 향과 맛도 더할 수 있다. 을 생강술에 재어 놓는 동안 양파 하나를 통째로 채썬다. 프라이팬에 중불을 올리고 가염버터를 녹인 후 양파를 볶는다. 가염버터긴 하지만 소금 한 꼬집 뿌리면 양파의 숨이 빨리 죽고 간도 짭짤하게 잘 맞는다. 카라멜 빛깔로 다 볶은 양파를 접시로 옮겨 식히는 동안 생강술에 재 둔 닭을 꺼내 스텐도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는다. 작은 체망에 전분가루를 한 숟갈 담은 후 톡톡 치면서 닭 위에 솔솔 뿌린다. 뒤집어서 한 번 더 솔솔 뿌린다. 다시 프라이팬에 중불을 올려 가염버터를 녹인 후 전분가루 뿌린 닭정육을 올린다. 껍데기가 아래로 가도록 해 기름 나오는 소리가 자글거리는 동안 소금살짝 뿌려준 후 뚜껑을 덮고 5~7분 기다린다. 껍데기가 노릇노릇 맛있는 갈색으로 변할 때쯤 뒤집는다. 다시 5~7분을 기다렸다가 꺼내면 그럴싸하지만 간단한 버터치킨&양파볶음이 끝난다. 가위로 자르면 껍데기가 다 분리되기 일쑤다. 조심스럽게 칼로 잘라주면 낫지만 지금은 코로나 비상시국이.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접시에 낸다.


말수가 적어 칭찬에 인색한 아니지만 어색한 남편은 칭찬봇 음식버전 메뉴얼 1번을 꺼내든다.

"꼭 파는 것 같다!"

(참고로 2번은 식당에서 맛난 걸 먹었을 때, "꼭 집에서 한 것 같다!")

빵, 돼지, 닭, 튀김 등 각종 껍데기 요리 마니아인 딸아이는 역시나 저 먹기 좋게 분리된 닭껍데기부터 해치우는 중이다. 입가며 손끝에 반들반들 묻은 기름기마저 사랑스럽다.

 

아침엔 과일이나 삶은 계란을 꺼내고 전날 먹고 남은 밥과 국을 렌지에 데핀 후 한데 말아 내놓아 불을 쓰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점심은 각자 학교, 회사, 유치원에서 해결하고 오는 우리 가족을 위해 저녁 한 끼만 차려내면 되는데도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갓 지은 밥과 방금 만든 반찬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 반찬을 한꺼번에 만들어 냉장고에 모셔 두고 평일에 데펴 주거나 생선이나 고기만 간단히 구워 내놓는 식으로 저녁을 때우는 일이 많다. 닭가슴살을 찢어 간장에 졸인 반찬이며 볶음탕, 찜닭 같은 걸 주말에 만들었다가 평일에 데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많았다. 하루 이틀만 냉장고에 넣어 두어도 닭 특유의 잡내가 생겨 먹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으로 질리게 시켜 먹어서 그런지 꼭 닭을 요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그래도 닭 요리는 어쩌다 한 번 만들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남편도 딸아이 꽃등심이나 채끝 스테이크, 삼겹살과는 다른 소박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한다.


지난 달에 이 버터치킨을 하려고 닭정육을 샀다가 도시락을 쌀 일이 생겨 날림 닭강정을 만들었었다. 이번엔 손바닥만한 닭정육을 여섯 토막을 내 소금 한 꼬집 뿌리고 생강술에 쟀다. 밀가루를 묻힌 후 물에 갠 부침가루(튀김가루나 하다못해 전분가루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부침가루만 있더라)를 입혀 지지듯이 튀겨 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동안 케첩과 굴소스와 올리고당을 2:1:1(대충이다. 레시피도 없이 만드는 요리에 무슨 비율 따위가 있으랴)로 붓고 식칼 손잡이 끝으로 하루견과를 부수어 비빈다. 기름을 뺀 닭튀김을 여기에 뒤적뒤적 섞은 후 도시락통에 담았다.


자투리 야채 볶음밥에 스크램블한 계란을 넣어 싼 김밥도 곁들여 챙긴 도시락을 고성 공룡 엑스포장 평상에 돗자리와 함께 펼쳤다. 밖에서 사 먹는 닭강정이 매워 입에 대지 못하는 딸아이가 이렇게 대충 만든 엄마표 날림 닭강정을 먹느라 두 볼이 미어 터지도록 세상 행복해 한다. 원래부터 닭강정을 좋아하는 남편도 맛있다고 열심히 먹는다. 꼼꼼하진 않지만 빠른 손 덕분에 아침에 30분만 수고해서 만든 대충 김밥과 날림 닭강정 이토록 신나게 먹으니,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아픈 몸을 이끌지언정 주방에 안 설수가 없었다.

 

온 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골골거릴 모습이 눈에 선한데 들여다보지도 못하니 애가 탄 친정 엄마가 전날 현관문 앞에 닭백숙 한 냄비와 찰밥을 두고 가셨다. 이것만큼은 남편도 딸아이도 반응이 신통찮다. 점심과 저녁에 연달아 닭백숙을 내놓자 딸아이는 대놓고 "왜 또 이거 먹어?"라고 좀처럼 없는 반찬 투정을 부다. 물에 빠진 고기건만 나는 닭백숙어쩌면 그렇게도 맛있을까. 두 사람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 나는 찰밥죽을 두 그릇이나 해치우고 산적처럼 닭다리 하나를 뜯으며 배를 불렸다.


도 엄마가 해준 닭백숙 먹고 힘이 낫는데 니들도 그래야 하지 않겠니? 남편은 입맛이 도는지(사실은 느끼해서)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온다. 그 사이 식사를 마친 딸아이는 입술이 반질거리는 줄도 모르고 꽃게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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