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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비 May 13. 2022

삼색 키토 김밥의 결말

나는 어쩌다 월남쌈을 말게 되었나

빅데이터가 무섭다. 야식 증후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유튜브 알고리즘에 키토 김밥이 나온다. 섬네일만 보아도 조리법을 대강 알겠다. 밥 대신 계란 지단을 깔고 속재료를 넣어 김밥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연달아 등장하는 양배추 키토 김밥도 마찬가지다. 신박해 보이겠지만 식상하다. 나는 30년도 더 전에 키토 김밥을 먹어봤다. 추억보다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보통 7세 이전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게 마련이라고 하는데, 6세 또는 7세 때 맛보았던 키토 김밥에 관련된 나의 기억은 완전히 왜곡된 채로 남아 있다.


식당에서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아 음식을 주문한 후였다. 엄마가 도시락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식당에서 도시락을 꺼내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 당시 2살 또는 3살이었을 남동생도 보이지 않으니 틀림없이 왜곡된 기억이다. 그런데도 도시락 속의 영롱한 빛깔만큼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도 정확히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몰랐을 그것은 요즘으로 치면 삼색 키토 김밥이었다. 


당근을 채썰어 볶는다. 시금치는 가볍게 데친 후 참기름과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우엉도 당근처럼 가늘게 채썰어 간장물에 조린다. 김밥김 위에 그것들을 삼등분해 쌓아 올리고 흐트러짐 없이 단단하게 말아 먹기 좋게 썰어 차곡차곡 담았다. 우엉 조림의 짙은 갈색빛을 바탕으로 당근의 주황빛과 시금치의 초록빛은 서로 대비를 이루어 선명하게 빛나 그야말로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엄마는 무슨 재주를 부려 끈기라고는 없는 채소볶음과 무침과 조림을 단단하게 말아 터진 곳 하나 없이 썰어 담았을까. 어딘가 잘못된 기억인가 싶다가도 엄마의 살림 솜씨와 손재주를 생각하며 납득한다. 김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아까울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인 음식이었다.


엄마는 내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한 입 먹어보라고 권했다. 냄새에 특히 예민하고 입 안에 낯선 식감이 드는 것을 유난히도 싫어해 편식이 심했던 나를 위해 이런저런 궁리 끝에 만든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 말은 일단 잘 듣고 보는 나는 겁도 없이 덥석 한입 물었다가 그대로 뱉어 버렸다. 토할 것 같았다. 울고 싶었다. 우엉의 쓴맛과 당근 특유의 향기와 그들의 딱딱한 식감과 시금치의 물컹함과 김의 비린 맛이 나의 약한 비위를 다채롭게 자극했다. 엄마의 실망과 낭패와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을 보며 느낀 죄송함과 죄책감은 토해내지도 못하고 어린 마음에 상처를 냈다. 손도 대지 못한 나머지 삼색 키토 김밥을 엄마가 어떤 얼굴로 처리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후 나는 스무 살이 지나도록 우엉이 들어간 김밥은 먹지 못했다. 다 큰 어른이 우엉 들어간 김밥도 못 먹는 게 부끄러워 겨우 한 입 넣어 본 후에야 우엉 조림이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근 김밥은 딸아이 이유식 재료로 산 당근을 처리하지 못해 만들어 보았으나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시금치 무침은 아직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내 입맛을 전혀 닮지 않은 딸아이가 당근과 시금치를 좋아해 자주 식탁에 오르기는 하지만.


입맛으로만 아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삼색 키토 김밥은 이유식 만드는 책을 읽다가 떠올랐다. 채소를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마침내 채소를 먹게 하는 방법을 읽을 때였다. 처음에는 채소를 완전히 갈아 다른 재료에 섞어 정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 맛보게 하다가 4단계가 되어서야 채소를 잘게 다져 눈에 보이게 다른 재료와 섞어 맛보게 하라는 것이었다. 잊힌 어린 시절 속에 숨어 있던 삼색 키토 김밥이 떠올랐다. 색깔도 모양도 맛도 선명하다 못해 펄떡펄떡 살아 숨 쉬던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조금 덜어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여러 번 궁리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었을 음식을 먹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니라고, 음식 솜씨는 뛰어날지 몰라도 유아기 식성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엄마가 잘못한 거라고, 무엇이든 잘 먹는 딸아이를 위해 이유식을 만들며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딘지 미심쩍은 회개 끝에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삼색 키토 김밥과는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잠시 재회했다. 정말 맛있지만 전혀 살이 찌지 않는다며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섬네일을 보면서 김밥 속재료에 소금이며 참기름이며 통깨며 맛 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지, 김밥은 좋아해도 키토 김밥이라면 딱 질색이야, 붕붕 콧방귀를 꼈다. 키토 김밥 조리법을 소개하는 유튜브는 외면했지만, 무엇이든 잘 먹던 딸아이가 조금씩 가공식품에 눈을 뜨면서 채소를 잘 먹으려 하지 않자 나는 궁리 끝에 월남쌈을 만들었다. 


따뜻한 물에 적신 라이스페이퍼를 깔고 그 위에 깻잎을 올린다. 채썬 노란 파프리카와 빨간 파프리카와 옅은 연둣빛 오이를 올린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햄을 올려 돌돌 말아 준다. 아이가 먹을 음식이니 작게 말고 작게 썰어야 한다. 칼을 갖다 대자마자 라이스페이퍼가 착 달라붙는다. 옆구리 터질세라 온 신경을 집중해 조심조심 썰어 나간다. 동그란 월남쌈 단면이 예쁘다. 투명한 라이스페이퍼 안에 짙은 초록빛의 깻잎 테두리, 그 속에 사이좋게 담긴 노란빛과 빨간빛과 옅은 연둣빛과 노릇한 분홍빛이 조화롭다. 나를 닮지 않은 딸아이는 다행히 월남쌈을 마음에 들어 했으나 한 입 넣자마자 곧바로 얼굴이 찌푸려지더니 손가락으로 깻잎을 골라냈다. 그 손길에 조심조심 썰어 내왔던 월남쌈이 처참하게 망가진다. 찢어진 라이스페이퍼와 지렁이처럼 내팽개쳐진 깻잎 조각들을 치운다. 파프리카와 오이를 잘 먹어서 다행이다. 아이에게 깻잎은 식감도 향도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아, 내가 딸아이보다 조금 더 컸을 시절에 먹었던 그 삼색 키토 김밥의 결말도 이랬을 것이다. 파프리카와 오이를 오물거리는 아이의 입을 바라보며 나는 삼색 키토 김밥을 삼키지 못했던 나를 용서했다. 엄마에게 지웠던 죄책감과 책망도 거두었다. 나는 엄마의 지극한 사랑 덕분에 딸아이를 위한 월남쌈을 돌돌 말았으며, 파프리카와 오이가 딸아이의 입속에서 아삭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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