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누비 Jun 10. 2022

밑반찬을 재는 일요일 오후 (2)

엄마가 딸에게

올해 딸이 다섯 살이 되면서 친정 어머니로부터 육아 독립을 했다. 남편이 유연 근무가 가능한 곳으로 이직한 덕분에 유치원 등원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아이가 어린이집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 퇴근 후 하원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친정 어머니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왔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일찌감치 친정집 바로 옆으로 이사했었고 출산 후에는 친정 어머니가 산후 도우미 역할을 대신해 주셨다. 복직 후에도 오롯이 친정 어머니가 가정보육을 해 주셨으며 어린이집에 갈 시기쯤에 아이 키우기 좋다는 동네로 이사를 갔었는데 친정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출퇴근하며 어린이집 등하원을 전담했었다.


친정 어머니는 육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도맡다시피 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아이 입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네 아이 입에 넣을 것은 네가 직접 해서 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판 이유식은 안된다며 공동 양육자로서 엄포를 놓았고 쌀미음 만드는 법과 고기 손질하는 법만 가르쳐 주셨다. 그때까지 요리는커녕 그릇이나 숟가락 모양새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글자 그대로 울면서 이유식을 만들어야만 했다. 매일 친정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아이 보는 걸 도와 주시니 몰래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일 수도 없었다. 시금치를 씻지 않고 데쳤다가 죄다 버리기도 했다. 기껏 만들어놓은 이유식 큐브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버리는 날도 있었다. 냄비 바닥에 죽이 눌어붙으면 그날 이유식은 늘 그랬듯 망하는 날이었다. 어쩌다 괜찮게 성공하는 날엔 아이가 먹지 않아 걸쭉한 미음과 함께 마음도 버렸다. 


여러 가지 식재료 중 가장 보드랍고 싱싱한 부분만 따서 이유식으로 만드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남는 것들은 버릴 수는 없었으므로 나와 남편이 먹을 국이나 반찬들도 만들어야 했다.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복직을 하며 요리는 가장 괴로운 업무가 되었다. 남편이 야근하느라 저녁을 먹고 오는 날에는 기껏 해놓은 국이나 반찬들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울고 싸우고 버리고 하는 사이 미음에서 죽으로, 진밥에서 쌀밥으로 각개전투를 하던 음식들도 하나 둘 합쳐졌다. 아이 간장과 고춧가루와는 자연히 멀어졌다. 소금, 간장, 참기름에서 시작해 굴소스, 올리고당, 케첩 등 양념 가짓수가 늘어났다. 채소와 고기도 조금씩 크게, 조금씩 작게 크기를 맞춰 갖고 요리의 횟수와 소모되는 시간과 사용하는 프라이팬, 냄비들의 개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요리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때마침 이사를 오며 식기세척기를 들였고 설거지에 대한 부담도 대폭 줄이면서 재미에 가속도가 붙었다. 아이도 함께 자라며 매운 것만 아니면 못 먹는 것이 없을 만치 입맛의 폭이 넓어졌다. 겨우 간만 맞추던 맛에 재료의 맛과 감칠맛을 조금씩 입혀 나갔다. 요리의 선순환이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요리를 잘 하거나, 꼼꼼하게 하거나, 외식을 잘 하지 않아 얻어 오는 정보도 많았다. 윤이에게서 괜찮은 요리 유튜브 채널을 얻어 오고 경이에게서 맛있는 백간장을 찾아 오고 영이에게서 새로운 반찬들을 알아 갔다. 원래 매사에 속도가 빠르고 무엇이든 가짓수 늘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도 휘뚜루마뚜루 매 끼니를 차려 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른 두 입에 아이 한 입, 다 해 봐야 채 세 입이 안 되는 단출한 살림이라 밑반찬은 500ml가 되지 않는 유리 반찬통 하나만 겨우 채울 정도로만 만든다. 그런데 그날따라 냉장고에서 오랫동안 구른 식재료가 많아 반찬통이 넘쳤다. 만든 것들을 죄다 두 통씩 담아 내는데 친정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넌지시 저녁 일정을 물으시는 걸 보니 아이가 보고 싶으신가 보다. 한 통씩 종이 가방에 담아 아이와 함께 친정집으로 향했다. 친정 어머니가 가져 가라며 냉장고에서 소시지 볶음, 오징어 볶음, 콩나물국, 진미채 볶음을 꺼냈다. 나도 너무 많이 만들어서 가져 왔다며 종이가방에서 소시지 볶음, 오징어 볶음, 황태국, 숙주나물 무침을 꺼냈다. 손녀 육아로부터 탈출한 후 산후 도우미 일을 시작한 친정 어머니도 일요일 오후에 다음 주를 위한 밑반찬을 만들었던 것이다. 


같은 걸 만들었다며 기껏 꺼낸 반찬을 도로 냉장고에 넣으려는 걸 뺏다시피 하며 가져온 반찬통의 빈 자리에 엄마의 반찬들을 담았다. 오징어 볶음이 두 통이다. 하나는 진한 간장 양념에 꽈리고추를 넣어 만든 어른 오징어 볶음, 하나는 잘게 썬 오징어와 파프리카를 싱겁게 간해 만든 아이 오징어 볶음이다. 오징어와 소시지에 들어간 칼집부터가 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콩나물국의 시원함이며 진미채 볶음의 부드러운 맛은 반찬가게의 그것과도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음식이다. 조금은 뿌듯해하며 호기롭고 싶었지만 조금 민망하고 조금 많이 두 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소시지 볶음이나 오징어 볶음을 만들 때는 요리 유튜브 채널을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보지 않았다. 늘 먹어온 음식이니 양파나 소시지나 오징어나 대파 따위를 숭덩숭덩 썰어 웍에 때려 놓고 간장 조금, 소금 조금, 굴소스 조금, 다진마늘 조금 넣어 휙휙 둘렀을 뿐이다. 충분히 익고 간이 맞으니 그럭저럭 맛이 난다. 이유식을 만들 때부터 울며 익혀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알려 준 맛있는 간장이나 참치액을 조금 넣은 덕분인 줄 알았다.  유튜브로 요리를 배워 쉽게 한 줄로만 알았다. 워낙 요리 실력이며 손재주가 출중한 우리 엄마가 온갖 정성과 재주를 부려 차린 밥상을 삼십 년 넘게 받아 먹기만 한 덕분에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전수받은 맛의 기억으로 그 정도나마 뚜그당거릴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름만 같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두 반찬을 나란히 접시에 덜어 밥상을 차리다 아직 멀고 먼 나의 요리 솜씨의 비결을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아이가 먹지 못하니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가 엄마에게 받아 온 진미채 볶음은 금세 동이 났다. 남편이 아쉬워 입맛을 다신다.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미채는 찜기에 쪄 부드럽게 만든다. 고추장, 물엿, 간장 등등을 일정 비율로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이게 비법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까먹어도 괜찮다. 난 엄마의 딸이니까 다시 물어보면 된다. 그만 내가 해 줄게 냅둬라, 하면서도 비법을 알려주는 엄마의 목소리는 몹시 신나 보였다.) 물을 조금 부어 찐 진미채를 휘적휘적 젓는다. 양념이 잘 안 스며든다 싶으면 웍에 올려 조금만 불을 쬐 주면 된다. 보리차를 밥에 말아 일부러 소박하게 한 끼를 때웠다. 고추장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이가 먹지 못하는 게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변비로 고생 중이라 먹는 게 예전만 못한 아이가 젓가락을 깨작거리는 걸 보니 한편 안타깝다. 매일 너무 빨리 자라서 아깝기만 했는데 지금은 고추장 조금 들었다고 이 맛있는 걸 먹지 못하니 또 아깝다. 밥 하나는 잘 먹는다며 아이의 볼록한 두 볼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때가 아득하다. 골고루 먹이려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했더니 아이는 그만 왈칵 구토를 했다. 불쌍하고 안쓰러워 저 좋아하는 것만 떠올려 장을 본다. 꼬치어묵, 볶음밥, 브로콜리무침, 고등어구이, 돈까스, 오이스틱, 버터치킨, 소불고기구이, 고구마전... 오늘은 우리 엄마는 만들어 본 적 없는 버터치킨구이를 해야겠다. 아이의 볼록한 두 볼을 보고 싶다.














 



이전 09화 밑반찬을 재는 일요일 오후 (1)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접시 하나에 엄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