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by ju


앞을 보고 나아갈 때보다,

멈춰서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것들이 많다



걸어온 걸음마다 찍힌 발자국의 나이테를 세다 보면,

이미 계절은 몇 바퀴를 돌아있다



취하지 못했던 태도를 탓하며 후회해도,

나를 스쳐가는 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며 아쉬움을 묻어도,

그럼에도 아쉬움은 내 원동력이기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곤 한다








활자 하나하나를 덧붙여 문장을 이어 적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내 손을 끌고 가기 바쁘고

어느새 이끌려가는 데에 익숙해져 버린 나지만,



발화점에 다다라 확 불이 붙은 후 서서히 연소해 가는 순간의 감정들이 꺼져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인 것이

나는 아쉽다.



아른거리는 이미지들을 각인시켜 놓으려

하루의 문장을 적어 내린다



"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간절해도 때가 무르익어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예사롭지 않은 인연으로 시절인연을 맺었다.



봄비는 그냥 내렸고, 수선화는 그냥 피었다



봄비와 수선화의 관계처럼 그것이 '그냥'이 되려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참음도 필요하고, 주고도 내색하지 않는 넉넉함도 필요하고, 고마움을 잊지 않는 마음 씀도 필요하다.

"



-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내내 품고 있던 아쉬움을 정의 내려주었다



한번 마음을 주고받으면, 손가락 하나만 닿아있어도 안아보려 하는 게 내가 관계를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멀어진 관계들이 이따금씩 떠오를 때의 감정을 뭐라 정의 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아쉬움인지 후회인지 모를 감정들은 한편에 묻어두고 다음에, 다음에 다시 닿아보자고 다짐하곤 했었다



또 시절이 오겠고, 누군가와 닿겠고, 시절을 그리워하겠고, 또 지나가겠고..



봄비와 수선화처럼

때가 되면 닿는, 무르익음을 기다려주고, 마음을 써주고

그냥,

그냥이 되는 관계들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뜻의 종착지는

부정이 아닌 긍정이었다





그 덕에,

근래의 근황은 아쉬움을 묻어둔 관계들을 다시 껴안아보려 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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