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허상이기에 애틋하다
옅어지는 것들을 추억한다
이를테면 계절의 향이 그렇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포착의 욕심은 카메라를 쥐게 만들었고, 나는 욕망에 충실하며 계절마다 셔터를 눌렀다
계절의 경계에 들어서면 향은 희미해져 가는 동시에 진-해져갔다 소멸과 생성, 순간마다 변화의 과정을 반복하는 흐름은 제 몸을 웅크렸다 펴는 주름진 애벌레의 걸음과 닮아있었다
느리지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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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랗게 담벼락에 즐비한 개나리, 바람에 날리는 연분홍의 벚꽃 잎, 잔디밭에 깔린 형형색색의 돗자리와 도시락, 깍지 껴 꼭 붙잡은 두 손
온기가 더해진 바람은 살랑이며 새순을 간질이다, 피어난 꽃잎을 하나 둘 데려간다
'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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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젖은 셔츠, 얼음장 같은 포카리, 부서지는 하얀 파도,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 뜨거운 햇빛에 달궈진 검은색 보닛, 꼭 쥔 손마디마디 배어있는 땀방울.
축축하고 시원한 바람이 간간히 몸을 식힌다
뜨거울수록 차가워지는 것들을 애정한다
땀 흘린 후 들이키는 살얼음 맥주, 에어컨 바람
파아란 동해바다, 저마다의 초록을 뽐내는 가로수들
'여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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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거리며 채도 높은 색으로 익은 가로수들, 코를 찌르는 은행향, 냉기를 은은하게 품은 바람이 훑으면 우수수 떨어지는 이파리들
끝에 다가왔음을 암시하듯 조금씩 벌거벗은 나무들과 진하게 물들여지는 거리
'가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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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띄운 코코아, 얼굴까지 감싼 두터운 목도리, 손가락 뚫린 장갑, 칼바람에 벌게진 얼굴, 질퍽해진 거리, 젖은 바짓자락, 성에 낀 속눈썹
무채의 미학, 흑백의 단조로운 색의 향연은 삭막하지만, 그 단조로움은 때로 안정감이 된다
헐벗은 나무들과 쌓인 흰색의 눈, 그리고 질퍽이는 도로, 마주하는 풍경에 입김을 불어넣을 때,
'겨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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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바라보기 위해선, 바라보는 대상의 이름을 잊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네 번의 경계를 달린다
경계에 닿을 때마다 변해가는 풍경에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애틋한 순간들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