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애찬(靑春哀讚) 첫 번째.

by 삼장법사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지금...


문득문득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행복했으나 불안했던,

즐거웠으나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기억...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듯

언젠가는 나의 청춘을 얘기하고 싶었다.

과장이나 미화 없이 담담하게...


이렇게나마 한바탕 토해내면

나를 붙잡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다.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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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시절을 서울에서 보냈다.

3형제의 둘째로 태어나 성실한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적당하게 공부하고 적당하게 놀며

재수 끝에 대구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동시에 합격한 경기권 대학의 입학을 원하시는 부모님에게

‘장학금에 기숙사까지 제공된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제 내 마음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대학교정.jpg


한약재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시는 아버지와

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신 어머니.


경제적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난 나만의 욕심을 생각해서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고

갖가지 거짓말로 부모의 피땀을 송금받아 아낌없이 소비해 버렸다.


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

지금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찌 되었건 한 가지는 명확하다.


난 나밖에 몰랐고,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며,

부모의 희생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해양경찰.jpg


동해바다에서

해양경찰로 2년여간 군생활을 하는 동안,

그 또래의 청년들이 그러하듯 철이 드는가 싶었지만

제대하고 복학하였을 때에는

이전과 똑같은 사고방식에

돈씀씀이만 더 커진 25살 어른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다.


해운대의 호텔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금요일의 근무조를 오전으로 맞춰

오후 수업을 마친 내가 기차를 타고 해운대역에 도착하면 개찰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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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 그녀의 야간 근무 출근시간까지,

그녀와의 3일은 나에게 최고의 행복이었고

난 그 시간만을 기다리며 나머지 4일을 살았다.


난 꿈도 없었고 목표도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만이 나의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녀를 만나면서

나는 더욱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고,

부모가 송금해 준 피와 땀은

나의 치기 어린 감정을 채워주는데 허비되었다.



난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교재비를 빌미로 수십만 원을 송금받았던 날이,

어머니가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받은 날이었음을.


그러나, 역시나 난 변함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약간의 죄스러움만 있었을 뿐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은...

어김없이 계속되었다.


지금까지도 난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왜 그런 사람이었는지를...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서도.

그럴만한 사건이 있어서도..

나쁜 유전자를 받아서도...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 분명한 건...

난, 부모의 피땀을

나의 감정적, 육체적 배설과 바꾸는

쓰.레.기. 였다는 거다.


(두 번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