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광동에서 족두리봉 방향으로 향한다.
할머니는 족두리봉 너머에 있는 향로봉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신다. 산 중턱 여승이 모여 살던 절과(기억 속 어린 나는 그 사이에 누워 귤을 까먹고 있다.), 어느 산의 고개를 누구와 어떻게 다녀오셨는지, 시간을 봉우리처럼 집어 생생하게 들려주신다.
할머니의 기억을 펼쳐보는 사이, 등산로의 초입을 알리는 운동터가 나타난다. 그곳의 기구들은 진한 초록색의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져 있다. 한 구석은 마치 과거의 가지가 자랐던 자국처럼 바랬다.
그것은 어느덧 자연스러워 보인다. 산의 여느 나무처럼 무르고, 그래서 단단해 보인다.
운동터를 지나 산을 계속 오르다 보니 계단처럼 깔린 데크길과, 흙과 돌로 덮인 길이 나온다.
익숙한 데크길을 뛰어 올라갔다. 할머니가 찬찬히 흙길을 올라오신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평평한 계단이 올라가기 좋지 않나? 흙도 없고, 돌도 없고."
"흙 밟는 게 무릎 편혀~."
그 말씀이 오래 남는다. 도시 사는 사람들은 시멘트 길을 하도 걸어서 무릎이 아픈 거라고. 흙길을 자주 걸어야 무릎도 편하고 발도 안 아프다고.
흙은 닿거나 밟으면 그만큼 들어간다. 우리의 무릎은 그렇게 보호되는 건가.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건 대부분 그렇다.
풀과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휘고,
강과 바다의 표면은 일그러진다.
자연스러운 것은 무르고, 흔들리고, 일그러지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단단한 땅이 되고, 자연스러워진다.
촉촉하게 파고든 발자국과 무릎을 번갈아 보다
한결 경쾌해진 걸음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