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여름이면 밤에 러닝을 한다. 한낮의 매섭던 더위도 서서히 식고, 밤공기와 풀냄새가 기분 좋게 섞여서 불어온다. 올해 여름도 부단히 식어가고 있구나. 길옆으로 어느새 울창하게 자라난 풀을 온몸으로 쓸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호흡을 다독이고 먼 풍경을 바라본다.
'나 괜찮은 사람이 되었나?'
꾸준하게 하는 일이 있었던가. 내가 매일 같이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달리기'다. 루틴의 즐거움이라면 코웃음을 치던 사람이었지만, 매일 같이 하는 일이 나를 역설적으로 자유롭게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과식을 한 사람이 가스 활명수를 급히 찾는 것처럼, 불어난 체중과 나태해진 정신머리를 말끔히 씻어내릴 처방책이었으나, 계절이 바뀌고 안 나가면 서운해지는 서너 해가 지나가며, 달리기의 몇 가지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우선, 달리기는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뿌듯하다.
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이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는데 너무도 중요하다.
자신도 모르게 불어나는 불안이나 자기 비하 따위는 조절하기 힘든 경우가 참 많은데, 꾸준한 행동에서 오는 뿌듯한 느낌이 이 감정들이 스며들 틈을 메꾸곤 한다. 꾸준히 밖을 나서고 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일단 치고 시작하자.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얼마만큼의 무게로 존재하는지 땅을 내딛는 두 발에서 열기와 함께 느껴진다. 금세 헐떡거리며 숨을 조절하려 애쓴다. 지저분한 리듬 속에서 자신의 호흡과 속도를 찾아가려 애쓴다.
이 과정에서 신체를 주체적으로 조절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호흡을 안정시키고 정리된 동작으로 바람을 헤치며 달리고 있는 자신을 삼인칭으로 바라보며 미친 사람처럼 씩 웃는다. 조금 강한 사람이 되었나?
이 몸의 주인이 바로 나다!
잡생각과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그때 내가 왜 그랬더라. 더 심한 욕을 했어야 했는데. 저녁을 좀 가볍게 먹을걸, 같은 후회 섞인 장면들이 머릿속을 채우기도 한다. 그러다 금세 몸이 힘들어 생각이 달아나 버린다.
언젠가 명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명상은 잡생각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한 감정과 생각이 가만히 있지 않고, 부단히 흐른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한다. 호흡에 집중해 생각의 흐름을 느껴보는 것에서 달리기도 명상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달리기는 때로 여정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에서 오는 재미도 분명히 있지만, 걸음마다 마주하는 장면이 또한 인상 깊다. 달리는 동안 변화하는 빛과 풍경, 어느덧 다시 피고 지는 계절을 순간순간 온몸으로 안는다.
맞은편에서 뛰어오는 사람에게는 속으로 응원의 말을 건네기도 한다. '이 저녁에 달리기를 하시다니 어디 사는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대단합니다. 하시는 일 쭉쭉 펼쳐가시고, 다음에 또 봅시다.'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꾸준히 하는 일을 갖고 있는가. 나는 '매일'은 아니고 '매일 같이' 한다고 이야기한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일상을 얼마나 건강하게 지켜가는지, 달리기라는 루틴이 주는 즐거움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알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나를 다독이면서, 어지러운 숨을 고르고 품을 넓히면서, 지나가는 당신을 응원하면서.
새로운 풍경에 다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