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히고 다시 들여다 보기를

by 이주성

'이스라엘, 가자 지구 병원 공습...' 쏟아지는 기사를 헤드라인만 읽고 빠르게 넘긴다. 둘로 나뉜 댓글이 쉽고 재밌어 보인다. 유튜브를 켜고 사건을 덮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스크롤. 창가를 위태롭게 걷던 고양이가 사람처럼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다. 이어지는 퉁퉁퉁 사후르. 이건 또 뭐지? 정말 맥락 없이 웃기네. 맥락이 없어.


혼란스럽던 세상이 손가락 끝에 쪼그라든다.

오늘 나는 무얼 읽고, 무엇을 잊었더라.




AI로 양산되는 이미지와 숏폼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피드를 채우고 있다. 자동화하여 생산하고 업로드하다니 그야말로 '이미지 혁명'이다. 예컨대 AI가 알아서 이미지를 제작하고 텍스트를 요약하여 자동 게시하는 블로그가 늘어나고 있다. 산업혁명의 시대가 기계로 제품의 대량생산을 이뤘다면, 현시대는 AI를 통해 이미지를 대량생산하고, 전 세계로 넓혀진 대중이 이를 소비한다.


누구나 상상한 것을 이미지와 영상으로 제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유의 이면을 바라본다. 맥락(context) 없이 생산되는 콘텐츠(content)와 스크롤 형식이 이미지와 정보의 소비 속도를 가속화하는 형태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문득 불안감을 발견하곤 한다.




한 사람의 개인이 마치 데이터와 이미지처럼 소비되고 판단되는 경향을 경계하고 있다. 매일 손가락 끝으로 손쉽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과 '속도'로, 한 개인을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변과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정치적 현안과 시대담론을, 그 끝으로 자신에게 그러한 태도를 보인다면 말이다.


인간은 맥락 없이 양산된 이미지처럼 소비되고 만다. 단편적인 정보만을 바탕으로 마치 전부를 이해한 것처럼 판단할 우려가 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 또는 짧은 짤과 이미지만으로 대상을 수용한 적이 있는가. 더욱이 SNS의 스크롤 형식은 책처럼 이전 장으로 되돌아가 받아들인 정보를 다시 들여다볼 여지를 희박하게 한다. 자신을 들여다 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사유의 시간이 점차 짧아지는 것이다.


과잉정보에 피로한 현대인이 흔히 보이는 태도처럼, 손쉬운 잣대인 이분법이나 무분별한 혐오에 편승하기 쉽다. '그것은 범법이다. 혹은 합법이다.' 또는 '그것은 공산주의의 사상이다.', '그것은 페미니즘이다.'와 같은 정도의 시야로 사안을 수용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념에 대한 혐오로 점철된 한반도 위에 현대사를 반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이야기와 태도, 시대 담론은 어떠한 배경에서 출현하여, 현재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어떠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천천히 읽히기를, 다시 들여다 보기를


콘텐츠의 생산 수용 방식을 이전처럼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기술이 변화시키는 환경 속에서 무엇을 경계하며 나아갈지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토론해야 한다. 기술이 제시하는 속도와 단순화된 잣대의 종속을 인지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 보는 경험을 제안한다.


삶 속에서 대상과 정보를 보다 천천히 읽기를,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때로는 예술이, 실험적인 작은 브랜드들이 그러한 경험을 공유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사고의 틀이 와해될 때, 그 틈으로 새로운 이해를 받아들이는 경험. 결과만이 아닌 맥락을 같이 들여다보는 경험, 자신을 깊이 있게 사유하고, 깊어진 품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경험을 해보자.


결국은 맥락이 담길 틈이 중요하다. 천천히 읽고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의 폭이 필요하다. 나와 당신이 펼치는 이야기는 데이터 조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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