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한 아내가 느닷없이 요리 강좌가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전주먹거리시민대학에서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평소 요리에는 부담이 없기는 했으나 새로운 요리를 알게 된다는 기대감에 신청을 했다. 다행히 시간대도 저녁 7시 무렵이라 마음이 바쁘지 않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어울려 손발을 맞추며 요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처럼 혼자 신청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가족끼리 신청한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부지런히 도착해서 부지런히 함께 하다 보면 뚝딱 새로운 요리가 만들어졌다. 매주 있는 모임에서 안면을 튼 이와 손발을 맞추어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한 명이 요리를 진행하면 다른 사람은 설거지를 맡아서 하는 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속도도 빨라지고 요령이 생겼다. 한창 배고플 때 저녁을 먹지 않고 참가해서 만드는 요리이다 보니 끝날 때쯤이면 더 배가 고팠다. 코로나 상황인지라 요리 후에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웠다.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 아내가 다른 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다룰 예정인 요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아내는 채소나 야채 무침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본인이 하고 싶으나 퇴근 시간이 맞지 않으니 먼저 하고 있으면 퇴근 후에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10번을 개근하면 참가비까지 돌려준다는 이야기도 함께 덧붙였다.
어차피 화요일에 요리교실을 가니 가는 김에 재료를 받아 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엉겁결에 먹거리 시민대학 요리 프로그램을 참가하게 되었다. 묵직한 요리 재료를 받아서 살펴보니 내용물이 알차고 신선했다. 그냥 받기에 미안할 정도였다. 이전 프로그램에서는 만든 요리를 나눠서 가져가다 보니 어느 날은 양이 적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혼자 만들다 보니 한 가족이 먹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푸짐했다.
요리 프로그램 첫날, 서둘러 집에 가서 줌에 접속하였다. 그러나 노트북으로 화면을 보면서 요리를 따라 하는 일은 대면으로 하는 것과 달리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화면 볼랴 음식재료 손질할랴 마음만 바쁘지 진도는 나가지 않고 힘들기만 했다. 대면으로 진행할 때는 전체 요리를 다 지켜보고 만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지 않았다. 궁금하면 질문도 하고 계량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1회차 <황태콩나물찜과 감자 옹심이 수제비>
대면으로 할 때는 각자 역할을 나눠서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혼자 하다 보니 어수선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렸다. 늦게 도착한 아내는 주변 정리를 하지 않으면서 요리를 한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시간은 없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아내의 잔소리까지 듣다 보니 짜증이 몰려왔다. 어찌어찌해서 요리를 다 마치고 나니 피곤이 갑작스럽게 몰려왔다. 웬만하면 밤을 새도 괜찮은 편인데 이번은 달랐다. 몸살이 날 것처럼 욱신거리고 온몸이 아프기까지 했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 주 요리 시간에도 크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최 측에서 대부분 요리 재료를 손질까지 다하여 준비해주셔서 큰 무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날 나는 딸과 함께 준비를 하면서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리를 준비하면서 대면과 달리 비대면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요리를 만들어 밴드에 올리고 다시 또 쓰러져버렸다. 조금 익숙해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요리를 계속해야 할까 하는 갈등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즐겁게 시작한 요리가 스트레스로 바뀌어 다가오니 프로그램을 신청한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다가오는 수요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만든 요리는 맛있어서 가족의 평이 나쁘지 않았던 게 그나마 보람이었다. 그것조차 없었더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날은 내가, 어떤 때는 딸아이가 요리를 만들었다. 가끔 아내가 거들기도 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가족이 함께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금 더 친해졌다는 점이다.
온 가족의 엄지 척 평가를 들었던 오리 주물럭
그럼에도 매주 한 주 한 주를 끝낼 때마다 쉽지 않았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이 바쁠 때는 딸아이 혼자 요리를 해야 했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덧 요리 프로그램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는 재미도 있었고, 그동안 배운 걸 응용해서 다른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작게나마 가족끼리 요리를 만들었던 추억도 생겼다.
여행은 즐겁게 시작해서 아쉽게 끝난다. 이제 막 즐길만하면 끝나는 게 여행이다. 그만큼 아쉬움도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요리 프로그램은 너무 힘들게 시작해서 빨리 끝나기를 고대했다. 하지만 끝날 시간이 되니 또 아쉬워진다. 비대면만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즐겁게 참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살짝 고민하다가 또 신청해볼 생각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요리를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