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만 보고 있어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지난주 가을 억새로 유명한 황매산을 다녀왔다. 황매산이 위치한 산청은 최근 산양삼의 고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함양과 인접해있다. 함양은 최근 산삼 엑스포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과연 명불허전이라는 말처럼 황매산의 억새는 장관이었다. 산길을 오르는 도중 나비 몇 마리가 눈에 띈다. 같이 간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자세히 보니 네발나비이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다. 사람들에게 나비 이름을 알려주고 환삼덩굴이 먹이식물이라 하니 다들 놀란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위해식물로 널리 알려진 환삼덩굴과 네발나비를 선뜻 연관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매산 억새
그렇게 많이 산에 다녔어도 그동안은 나비의 먹이식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이 없었다. 이런 형편이니 나비 이름도 나비가 먹는 식물도 제대로 알았을 리가 없다. 나비 종류가 많은 만큼 나비가 먹는 먹이식물 또한 많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팽나무부터 사초류까지 나비의 서식지는 넓고 다양하다. 문제는 평소 흔하게 보이던 식물도 막상 찾으려 하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나비는 무엇을 먹고살까?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나비와 친해질 준비가 된 셈이다. 설마 이슬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 바란다. 나비도 곤충인 이상 무엇인가를 먹어야 살아남고 성장과 번식도 한다. 예를 들면, 칡이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쥐방울덩굴이나 등칡은 차원이 다르다. 사향제비나비가 주로 사는 식물이 바로 쥐방울덩굴과 등칡이다.
내가 야생에서 사향제비나비 애벌레를 처음 만난 건 강원도 상원사에 갔을 때였다. 상원사 입구 근처에 등칡이 있었다. 그 키기가 사람 얼굴 크기만 할 정도록 큼지막했다. 사는 동네 근처에 칡은 있지만 등칡은 없기 때문에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등칡을 본 날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잎을 뒤집어 보니 애벌레 몇 마리가 보인다. 바로 사향제비나비 애벌레였다.
사향제비나비 애벌레
사향제비나비 번데기
사향제비나비 애벌레는 대식가에 가깝다. 등칡이나 쥐방울덩굴을 빠르게 먹어치우는 사향제비 애벌레는 인상적이다. 사향제비 애벌레가 먹이식물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두려운 마음이 들기까지 할 정도이다. 사향제비 애벌레는 다른 나비와 달리 먹이를 어찌나 많이 먹어치우는지 먹이 대기가 쉽지 않다. 쥐방울덩굴은 사향제비나비만이 아니라 꼬리명주나비 등의 먹이식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강원도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칡 대신에 쥐방울덩굴을 선택한다 해도 결코 쉽지 않다. 쥐방울덩굴 역시 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래저래 등칡이나 쥐방울덩굴을 먹이로 지속적으로 대기에는 만만하지 않다.
사향제비나비. 사진 제공: 전동희
한편으로 사향제비나비는 키우기가 쉽지 않은 나비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지인은 자연에서 알 50개를 가져와서 키웠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화하지 못하거나 애벌레 상태에서 죽는 바람에 마지막에는 한 마리만 남았다고 했다. 그 한 마리마저 우화 부전이어서 결국 그해에는 한 마리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당시에 얼마나 허탈했을까, 어쩌면 그럴 수 있나 하는 야속한 생각까지 들었던 게 사실이다.
알을 많이 낳는 어떤 나비들은 많이는 1,000개 내지 2,000개를 낳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살아 남아 성충까지 되는 비율을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나비의 생존 비율이 얼마나 낮은가를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종류의 나비라도 한 나무에 1,000마리 알을 낳아 모두가 성공적으로 부화한다면 그 나무는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천적을 중심으로 나비 알은 해소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연의 생태계는 스스로를 조절하면서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시켜 왔다.
다음 먹이식물로 인상적이었던 게 노랑제비꽃이다. 봄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제비꽃이다. 봄철이면 가까운 산에만 가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게 제비꽃이다. 그만큼 봄을 대표하는 식물이면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물론 알록제비꽃이나 남산제비꽃처럼 쉽게 볼 수 없는 제비꽃도 있지만 미국 제비꽃(종지나물)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더 많다. 식물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초과와 제비꽃 분야를 가장 난감해한다. 어떤 이는 80여 종이라는 이도 있고 다른 숫자를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제비꽃의 종류도 많고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에 식물 공부하는 이들도 제비꽃만큼은 어렵게 생각한다.
노랑제비꽃. 사진 제공: 박형근
그나마 꽃이 있는 상태에서는 무슨 제비꽃인지 알기가 쉬운 편이지만 꽃이 지고 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잎을 보고도 판단할 수 있지만 그런 제비꽃은 많지가 않다. 잎이 진 후 제비꽃은 그냥 제비꽃일 뿐이다. 그중 큰은점선표범나비의 먹이식물은 노랑제비꽃이다.
은점표범나비 애벌레
노랑제비꽃은 해발 6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제비꽃과 달리 줄기에서 꽃대가 나오는 특성이 있고, 특유의 진한 노란색이 매력적인 꽃이다. 노랑제비꽃은 큰은점선표범나비의 대표적인 먹이식물이기도 하다. 보통의 경우, 나비 애벌레는 제비꽃과에 해당하는 식물은 대개 즐겨 먹는 편인데 큰은점선표범나비만은 특이하게 노랑제비꽃만 선호한다. 하지만 꽃이 지고 나면 도무지 노랑제비꽃을 찾을 수 없다. 이럴 때는 식물을 구별할 수 없는 실력을 탓하게 된다.
큰은점선표범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