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나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나비가 있다. 바로 오토크랩터(붉은점모시나비)이다. 화려한 나비의 이름 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나비 이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과부나비일까. 어떤 이는 “그렇다면 홀아비나비도 있다는 말인가?” 라며 냉소적인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나비가 과부나비라고 불리게 된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이 나비가 나오는 키르기스탄, 카자흐스탄, 아프가니스탄은 척박한 환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맞다.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척박하기 그지없는 바로 그 땅이다. 내게 아프가니스탄은 간간히 뉴스나 전쟁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고,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소년>이라는 소설의 작품 배경으로 남아 있다. 카블에서 태어난 아미르와 하산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 이 성장소설은 탈레반의 탄압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며 겪는 이야기와 그 이후를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장기간 베스트소설로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척박한 땅인 아프가니스탄은 지리적인 입지 때문에 항상 강대국의 야욕의 대상이었다. 정치 혼란을 틈타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러시아의 야욕에 맞서 무자헤딘이라는 이슬람 세력의 반발로 내전이 벌어지면서 비극은 시작하였다.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지닌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택한 것은 게릴라전이었다. 흔히 말하는 치고 빠지는 식으로 러시아와 맞서야만 했다.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새로운 전쟁으로 내몬 건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미국은 911 사태를 주도했던 빈 라덴을 숨겨 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탈레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가? 아마도 말라라일 것이다. 201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어린이 인권 운동가이다. 그녀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탈레반의 탄압 때문이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히 적용하여 여학교를 폐쇄하는 등 여자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녀는 이 암울한 현실을 BBC에 알리는 한편, 자신과 여성들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싶다는 사실을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탄압과 위협이 따랐고 결국 총에 맞기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전쟁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인간임을 포기하게 만들고, 그동안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린다. 마침내 더 이상 사라질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때야 비로소 전쟁은 끝난다. 전쟁은 모두가 희망을 포기했을 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결국 오랜 내전 끝에 아프가니스탄의 국토는 피폐해지고 국민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전쟁의 후유증은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다. 변변한 지하자원이나 관광상품도 없던 터라 아프가니스탄의 GDP는 세계 최하위 상태이다. 기나긴 전쟁, 폐허가 된 땅, 질병과 굶주림 등이 이 나라를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말들이다. 빈민국이 처한 운명은 살아남기 위해 당장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절박감이 국민을 사지로 내몰았다. 즉,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 하지 않는 상황으로 치닫게 한 셈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돈이 되는 무엇, 즉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은 높더라도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가족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죽는 일쯤이야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적인 멸종 희귀종이면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오토크랩터(붉은점모시나비)의 나비 1마리의 가격이 100만 원을 훌쩍 넘다 보니 주민들 입장에서야 눈이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을 누리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기야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면야 그 정도의 가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남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가족의 굶주림은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일의 대가는 컸다. 높은 수익을 올리는 대신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남자들은 기꺼이 가족을 위해 그 길을 택했다. 사랑하는 이를 두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먼길을 떠나는 심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들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족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그들에게 나비는 한 끼의 식사였고, 아이들의 학비였으며 병든 어머니의 약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나비를 구하러 떠났지만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은 희망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마음만은 부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자가 아니다. 인생의 낙오자도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이들이야말로 영원한 승자이다. 히말라야의 산속으로 사라진 이들은 꿈속에서라도 찾던 나비를 만났을까? 남자들이 험준한 히말라야로 사라진 결과 마을에는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여자만이 남았다. 이 나비의 이름이 과부나비가 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