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장 강렬한 영화 한 편이 있다면 바로 <빠삐용>이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을 했던 <빠삐용>은 절해고도 악마의 섬에 갇힌 탈옥수의 자유를 갈구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탈옥이 불가능해 보였던 섬에서 파도의 흐름을 계산해서 물살에 몸을 맡기고 탈옥에 성공한 스티브 맥퀸의 마지막 표정이 눈물겨운 영화이다. 아마 영화를 두세 번 보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나에게 나비는 그가 날고 싶었던 자유로운 세상을 함축한 것처럼 여겨졌다.
빠삐용은 주인공의 본명은 아니다. 빠삐용(주인공 앙리)이라는 이름은 그의 가슴에 있는 나비 문신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앙리의 가슴에 그려진 커다란 나비는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그의 처지를 돋보이게 한다.
죄수들은 나비를 잡고 간수들은 이를 팔아 이득을 챙긴다. 위폐 전문가인 드가는 나비의 날개가 화폐 위조의 재료로 쓰인다고 거든다. 이 나비는 금속성 광택을 지닌 날기 때문에 화폐의 홀로그램 제조용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죄수들은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 와중에 앙리는 탈출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마침내 드가는 손으로 화려한 나비를 잡는다. 이때 등장하는 나비가 바로 코발트빛이 현란한 디디우스 모르포 나비이다. 원주민은 활로 이 나비를 잡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큰 크기의 나비이다.
Morpho 나비는 주로 남미와 아마존에서 서식하는 나비이다. 영화에서 드가가 모포 나비를 잡을 때, 화면을 클로즈업하는 데 코발트 빛 날개의 빛깔이 눈부시다. 이 나비는 빛에 따라 반짝이는 금속성의 푸른 광택이 도는 날개로 유명한 나비로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 날개의 비밀은 색이 없는 투명한 날개에 파란빛의 파장을 반사시키는 ‘나노 광결정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빛을 받으면 다양한 색깔로 빛을 산란하는 덕분에 열대우림 상공을 비행하는 조종사들은 1km 떨어진 곳에서도 모르포 나비를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빠삐용은 드가가 잡은 모르포 나비를 들고 나비 수집가와 흥정한다. 그는 나비 수집가에게 자신의 가슴에 그려진 나비를 보이며 파나마까지 보내는 금액을 물어본다. 운 좋게 탈출했던 빠삐용은 믿었던 나비 수집가의 배신으로 다시 수감되는 신세에 처한다. 나비는 영화의 또 다른 장면에 등장한다. 도주 과정에서 원주민 부족을 만난 빠삐용. 족장은 빠삐용의 나비문신을 마음에 들어하고 그는 문신을 새겨준 대가로 진주 주머니를 받는다. 이래저래 나비는 영화에 맛깔난 양념처럼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비 문신을 하거나 화려한 나비를 보는 날이면 내 잠재의식 한편에 웅크리고 있던 <빠삐용>의 한 장면이 꿈틀거린다. 자신의 몸에 나비 문신을 새겨서라도 그는 날고 싶었을까? 이 영화에서 빠삐용은 탈출에 성공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에 등장하는 나비 주인공들은 화려한 날개를 펼쳐 보이지 못하고 죽거나 사라져 버린다. 환상 속에서는 허공을 훨훨 날던 나비가 냉혹한 현실에서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맥없이 추락하는 비운의 운명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떠올릴 때면 나비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물론 하늘을 나는 것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나비의 우아함을 따라잡을 만한 것은 찾기 힘들다. 나비의 날갯짓은 촐싹거리거나 너저분하지 않아 좋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느리면서도 느림을 거부하는 우아한 날갯짓이야말로 나비의 숨겨진 매력이다. 하늘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에서는 지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진다. 나비가 수평의 지상에서 처음 날갯짓을 하는 순간 수평의 세상은 수직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수직의 공간을 품는 순간 나비의 세계는 무한 영역으로 넓혀지는 것이다.
만약 나비가 수평의 영역에만 머물렀다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은 나비가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나비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인간은 누구도 가본 적 없었던 신화 속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 그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그리하여 나비는 인간의 불멸의 꿈이었던 하늘을 접수하면서 마침내 신계의 영역에 도달한다.
그 기품은 수평과 수직의 공간을 넘나들면서 하늘을 자신의 놀이터로 삼는 데서 만들어진다. 물론 기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비 날개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 벌이 초당 190회, 모기가 800회를 하는 데 비해 나비는 10~12회 정도이다. 그래서 다른 곤충이 날 때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 반면에 나비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느린 속도는 느림에 가까운 나비의 날갯짓을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의 눈으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나비의 날갯짓은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비의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나비에게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천적에게 잡아 먹힐 위험성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쌍의 날개를 이용하여 날개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다. 코넬대 연구팀에 의하면 나비는 뒷날개가 없어도 앞날개만으로도 날 수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팀이 배추흰나비와 집시 나방의 비행궤적을 3차원 비디오로 촬영한 결과, 뒷날개가 나비의 속도와 자유로운 비행을 가능하게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나비에게 두 쌍의 날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자 축복인 셈이다.
날갯짓을 할 때 일어나는 미세한 소용돌이는 나비의 비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다. 돌풍이 불어도 안정성을 찾는 나비. 이는 아직까지 인간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나비만의 장점이다. 나비의 매력은 속도와 함께 나비의 비행 궤적에서 나온다. 나비가 하늘거리며 허공을 나아가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것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삶과 대비됨으로써 더 극명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피곤한 삶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밀려올 때, 허공을 가르고 다가오는 나비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하다. 황홀한 나비의 날갯짓이 팍팍한 내게 다가올 때 어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눈앞에서 나비가 팔랑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세상의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나도 자유인을 꿈꾼다. 나비가 사라지면 내 꿈도 사라질 테지만 그쯤이야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 <빠비용>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악마의 섬에서 마침내 탈출한 스티브 맥퀸은 이렇게 소리친다.
“이 자식들아, 나 여기 있다!(Hey you bastards! I'm still here!)”
그것은 자신을 가두려고 했던 사회에 대한 울분 섞인 표현이었겠지만 어쩌면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탈출을 도전했던 그 자신에게 대한 뜨거운 격려가 아니었을까? 그 목소리가 오늘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