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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생각이 필요할까?

by 산들


오늘 아는 작가가 이런 말을 물어보았다.

최근에 등단해서 열심히 창작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이다.


작가님은 글을 쓸 때 기본적인 틀을 세워놓고 쓰세요? 아니면 그냥 쓰세요?


그이 말의 요지는 개요를 써놓고 창작하냐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쓰냐는 의미였다. 그는 개요를 세워두고 글을 쓰면 글이 편하지 않다고 했다. 짜인 틀에 맞추다 보니 그만큼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작가라면 한 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내용이었다. 들으면서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 글을 쓸 때 이론을 떠올리며 썼던 경험은 별로 없다. 실제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은 글쓰기 강좌를 할 때, 학생들에게 그토록 많이 강조했던 이론이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론과 실제 글을 쓰는 과정은 다른 점이 상당히 많다. 이 말은 글쓰기 교재에 나오는 내용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 글을 쓸 때 떠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내가 글쓰기에서 가장 크게 중시하는 것은 목차와 제목이다. 잘 만들어진 목차와 잘 뽑은 제목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목차를 세워두고 글을 쓰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목차는 집의 뼈대와 같고 그가 어떤 내용의 글을 쓸 것인가를 한눈에 보는 데 유효하다. 글을 쓸 때 소목차는 정거장과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글 쓰는 이가 정상 경로가 아닌 다른 길에서 헤매거나 다른 실수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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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글쓰기에 앞서 생각을 많이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물론 논리적인 글을 쓸 때는 생각을 하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감성적인 글은 성격이 다르다. 심지어 이런 사람도 있었다.


저는 글을 쓰기 전에 심오한 생각을 좀 해야 해요.

네? 심오한 생각요?


사람들은 글을 쓰기 전에 무슨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심지어 학생들에게 주제를 주고 시간 내에 글쓰기를 시킬 때, 5분 동안 하늘만 쳐다보는 학생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학생이 쓴 글은 대단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런 친구들의 대답은 비슷하다.


저는 발동이 늦게 걸려요. 이해해주세요.


나야 이해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는 잘못된 습관을 몸에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달리기 대회에 나갔는데 신호가 울린 다음에 뛰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이가 결승점에 거의 다 도착한 다음에 뛰겠다는 것인가?


나는 다음에 다시 통화를 하기로 했지만 통화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원고를 쓸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12월이 되어도 그 사람은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때도 비슷한,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댈 것이다. 더 이상 통화하는 건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원고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꼭 있다. 물론 바쁠 수 있다. 나 역시 바쁠 때는 끼니를 건너뛰기도 했다. 우리는 때로 밥 먹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않던가. 사람은 한두 끼 먹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이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의 항변 말이다.


나도 노력은 했어요.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이나 노력했다고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안 되는 걸 어떡해요?


그는 얼마나 폭폭한 심정일까. 하려고 했는데, 해도 안 되는 상황일 때의 막막함을 나 역시 모르는 게 아니다. 아까 처음 이야기한 사람과는 조금 다른 뷰류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앞사람은 변명을, 뒷사람은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걸 면피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해봤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냐”라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걸 정말 시도한 것으로 봐야 할까. 책상 앞에 앉았는데 글이 생각나지 않았다거나 쓸 말이 없었다는 말이 타당한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단순하게 살지 않는다. 우리가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갈 때조차 목적을 가지고 간다. 길을 지나가다 무언가 살게 생각날지도 모르니까라는 생각으로 마트나 편의점에 들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행위는 대부분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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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글을 안 써봐서 잘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하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초중고, 그리고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읽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하다 못해 인터넷에 떠 있는 신문기사라도 보지 않았겠는가. 만약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해도 상관이 없다. 대충 글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알 정도면 된다. 그 정도면 일단 시작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어떤 사람은 당신과 나는 다르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이 있다. 당신은 전문가니까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겠지만 우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식이다. 어느 면에서는 타당하다.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이고 누가 뭐라고 해도 그에 대해 항변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쓰려는 것은 전문적인 논문이나 학술서적이 아니다.

그 사람은 현재의 나만 보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지금의 나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나는 그가 편히 쉬고 놀 때, 심지어는 자고 있을 때에도 글을 썼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다.


카페에 있던 피카소에게 비용을 지불하겠다면서 그림을 요청했다. 이 말을 들은 피카소는 냅킨에 휙휙 그림을 그린 후, 상당한 그림값을 불렀다. 황당했던 그 사람은 따졌다.


아니 30초밖에 안 걸렸잖아요?

이 그림을 그릴 수 있기 위해 40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피카소에게 그림을 요청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며 세상을 산다. 만약 그 사람이 글을 그렇게밖에 쓸 수 없다면 지금까지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투자하지 않은 시간만큼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그냥 오는 게 있던가. 그러니 오늘만은 변명 대신에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보자. 많이 걸리지 않아도 좋다. 일단 시작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당신이 언젠가 시간이 있으면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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