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필요했다

by 산들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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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에 필요한 굵은소금을 사러 갔다가 꽃소금을 사 온 나에게 아내가 한 말이었다. 물론 나 역시 굵은소금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 앞 마트에서 소금을 고르다가 보니 굵은소금 바로 옆에 또 다른 소금이 있었다. 그래서 굵은소금이려니 하고 계산을 하고 가져왔을 뿐이었다. 나도 잘못 사 왔다는 건 집에 와서야 알았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바로 가서 바꿔왔으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싶다.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오래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그렇게까지 욕을 먹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끔 눈앞의 작은 이익에 몰두하다가 더 큰 것을 못 보는 실수를 한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말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말로 받는 상처는 아프고 지독하다.


그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이 임계점에 다달라야 끓을 수 있는 것처럼 하필 그의 분노가 그때 폭발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분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그의 상처 나고 가시 돋친 말보다 내게 더 필요했던 건 ‘신경 좀 쓰지 그랬어’나 ‘다음에 잘해’ 정도였다. 그 말이 그렇게 어렵거나 힘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브루투스, 너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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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도 그때 꼭 필요한 말이 있다, 나는 그 시점에 그 말이 필요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누군가의 작은 격려가, 누군가의 약간의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지진이나 화산 폭발처럼 큰 사건 때문이 아니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로마를 지배했던 카이사르가 암살자들에게 저항을 포기했던 건 그의 친구였던 브루투스가 암살에 가담한 것을 알고 난 후였다.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저항하던 그가 한순간에 무너진 건 친구의 배신 때문이었다. 그 절망감은 생명에 대한 끈을 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져갔다.


우리가 살면서 잊히지 않는 말들이 있다. 가끔 그 말은 살아 있는 것처럼 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지독하게 괴롭힌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듣는 이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할 때가 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을 수도 있다. 그냥 무심히 별다른 생각 없이 했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오늘 같은 일이 늘 있는 일이고 어쩌면 일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내가 제일 화가 나는 경우 중에 하나는 뒤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건 뒤끝이 없는 게 아니라 개념이 없는 것이다. 이미 상대방은 상처 받을 대로 다 받았는데 뒤끝이 없다고, 이런 황당한 말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자기 좋을 대로 퍼붓고 사라지는 경우는 더 최악이다. 이런 인간과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생명을 살리는 말


예전에 혼자 일본 중부지방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후쿠이 현 근처에 해안절벽으로 유명하다는 곳이 있어서 찾았다. 도진보/TojinboCliff, 東尋坊(동심방)라는 곳이었다. 안내 설명서에는 주상절리로 도진보만큼 큰 곳이 세계에 3군데밖에 없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높이 50미터에 달한다는 절벽은 똑바로 서 있기 아찔할 만큼 깊고 아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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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 해변은 자살로 유명한 곳이었다. 실제로 이런 곳이라면 그런 충동을 받을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절벽 근처에 전화기가 있었다. 아마 일본식 생명의 전화였을 것이다. 민간단체에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상담을 하거나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는 말도 나중에 들었다. 마지막 생을 마감하고 싶을 때 누군가 그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어도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으니.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단 한 번에 의해서가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이들 가운데는 사람에 상처 받고 자연으로 들어간 이들이 의외로 많다. 사람에 치여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이 최후로 선택한 게 자연이었다. 그동안 축적되었던 말의 상처가 쌓여서 더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특히 욱하는 성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안 좋은 생각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 순간의 고비만 넘기면 되는 데 그게 어려워 두고두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지금 나는 내 안에 어떤 말을 키우고 있을까?
나를 살리는 말일까, 아니면 죽이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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