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으로 향한다.
길은 멀고 바람은 서늘하다. 처음부터 마음에 애써 신안을 담아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다가, 그리고 섬이 그리웠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가을이었다. 파란 가을하늘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켠에 번졌다. 하기는 하늘이 파랬더라면 아마도 산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지난 며칠 동안 일찍 찾아온 가을 추위가 매서웠다.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잔뜩 몸을 움츠린 채로 지내야만 했다. 그늘에만 들어서면 추웠다. 사무실에도 추울 때는 난방을 틀었으나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에서는 계절이 여름에서 겨울로 가을을 건너뛰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이쯤이면 따뜻한 햇살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는 남도라면 더 그렇다.
한때 완도에서 머무른 적이 있던 나로서는 신안이 낯설지 않다. 같은 남도일지라도 완도와 신안의 느낌은 또 다르다. 그때 우연히 갔던 증도의 해 질 녘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신안에 머무르면서 신안을 배경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을이 되면서부터 남도의 햇살이 그리웠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신안을 다녀왔다는 기억은 분명한데 1004 대교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004 대교를 지나 보이는 염전에서 그해 김장에 쓸 소금을 샀던 기억도 생생하다. 기억의 끝에서 나무머리로 유명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벽화의 추억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남도 식물을 보기로 했던 일행은 새백 무렵 먼저 출발한 터였다. 1004 대교 근처의 오도선착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집에서 1004 대교로 가는 길은 3시간 남짓이었다. 도로를 달리다 보니 표지판에 신안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목적지 이름이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거의 다 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명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지명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문과 사회가 어우러진 복합체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녹아들어가 있는 생명체이다. 나는 오늘 또 신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그냥 지나치려는데 무화과 농장이 보인다. 잠시 차를 세우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500평에서 11월 중순까지 무화과가 나온단다. 남도가 무화과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무화과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고 싶었으나 오늘 딴 것은 내일 택배로 보낼 것밖에 없어서 팔 수가 없단다. 아쉬움을 달래고 1004 대교로 향했다.
그동안 1004 대교를 지나치기는 했지만 주차장에 쉰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 그렇게 근사한 조형물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보냈다. 사람들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마 부부임직한 두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근사해서 뒷모습을 담고 양해를 구했다. 가을 나들이라도 나온 모양이었다. 하기야 가을은 집에서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계절이다.
다리 위에서 10km는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는 거리이다. 다리 위에서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바다뿐이라 제약이 심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주변을 볼 수 있는 구간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004 대교에서는 그럴 공간이 전혀 없다. 주의할 점은 구간 속도 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주변 경치에 취해서 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 날 범칙금이 날아올지도 모르니 조심할 일이다.
내가 완도에 머물 무렵 그해 개통한 천사대교는 남도에서 가장 긴 다리이다. 무려 10km. 이 다리가 놓임으로써 암태도와 자은도 등 여섯 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지게 되었다. 섬의 가장 어려운 점은 교통편이다. 섬 이동에 필수적인 배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신안을 찾는 이들은 좀 더 편안하게 이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오도 선착장 근처에는 둘레길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냥 무심히 쉽게 지나치는 곳이다. 식물을 공부하는 나는 일행과 함께 둘레길 답사를 나서게 되었다. 흐드러지게 열매를 맺고 있는 청미래덩굴을 비롯하여 꽃이 화려한 잔대, 특이한 밥풀고사리 등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좀처럼 보기 힘든 방울새란 군락지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올해의 마지막 가을 식물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