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의 명물, 에로스 서각 박물관

by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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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에서 에로스 서각 박물관을 몇 차례 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마 에로스라는 이름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에로스라는 이름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에로스를 성과 직결시키기 때문에 불편한 시각이 반영되기도 한다. 아이를 둔 가족이 함께 방문하기에 어려운 점도 있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천재적인 화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렸을 때, 등장인물들이 나체라는 사실이 문제되어 옷을 입혔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성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보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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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5공화국 정권에서 3S 정책을 내세울 때 적극적으로 활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때 무슨무슨 부인 시리즈가 전국을 뒤흔들었던 것도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무디게 만들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사회에서나 성을 언급하는 자체에는 다소 왜곡된 시선이 늘 상존한다. 문제는 하필 에로스 서각 박물관이 자은도나 다른 섬을 가기 위한 초입에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에도 뭐한 곳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번에는 지나치지 않고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입구에는 폐교를 박물관으로 전환하였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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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1관에 전시하고 있는 서각 작품을 보다 보니 에로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서각의 방식에 이렇게 다양한 표현방식이 있다는 걸 한참을 모르고 살았다. 역시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잠시나마 전주완판본문화관에서 판각의 재미를 맛보았던 나로서는 그 작품을 하는 일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예전에는 모르고 보았기에 그 느낌이 덜했으나 어느 정도 그 고통을 알고 난 후에 보는 작품은 또 달랐다. 하지만 1관이 다 끝나가도 에로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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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구심은 2관에 가서야 해소되었다. 말 그대로 2관은 성인을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원시적인 느낌, 그리고 생동하는 생명의 환희가 그곳에 있었다. 생명이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성 행위를 노골적으로 다룬 장면도 있었으나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미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에로스를 소재로 했다면 무엇인가 스토리가 있거나 생명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있어야 했는데 그다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에로스 서각 박물관 작품의 야한 장면이나 행위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그건 생명의 시작이자 원천인 셈이다.


우연히 정배균 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미 서각 경력 50년을 훌쩍 넘기셨다니 대단하다. 더 대단한 것은 그 많은 작품을 혼자 다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얼마나 열정적으로 뜨겁게 살았는지를 알게 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옆에 세워둔 작품이 어찌나 리얼한지 자꾸 눈길이 간다. 원초적인 성을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다른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많다. 하지만 이를 서각이라는 기법으로 구현한 박물관은 처음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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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해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박물관을 기획하고 개관했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아무리 뜻이 있어도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신안이라는 동네가 다시 보였다. 한때 많게는 1일 관람객이 14,000명까지 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박물관이 달리 보였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이후 직원이 줄고 박물관 사정도 좋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람객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이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기 있던 박물관이라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정 관장님은 1관과 2관까지 전체를 에로스 작품으로 전시했던 과거가 그리운지 자꾸 정체성 이야기를 하신다.


박물관의 특성상 실내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눈으로만 감상해야 했다. 박물관 밖에 있던 거대한 쌍룡 작품은 무게가 8톤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거대한 작품을 구상하고 작품으로 제작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작은 나무에 판각하는 것도 한참을 낑낑대고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작품이다. 작품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다. 쉬운 점은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1관과 2관만 구경하다 보니 실제 이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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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관장님은 다음을 위해 생명이라는 테마로 새로운 박물관을 구상 중이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멋진 박물관이 조만간 멋진 결과물로 나오면 좋겠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살짝 흥분이 되었다. 생명이 역동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박물관이 많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 그런 박물관 하나쯤 가져도 좋지 않겠는가.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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